의뢰인과 나 사이에 놓인 거리

프리랜서로 사는 법ㅣ모두가 고객, 모두가 협업 파트너

2024-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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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로 사는 법」에서는 김정현 프리랜서 에디터가 들려주는 프리랜서만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자유롭지만 불안한 밥벌이에 대한 고충을 통해 프리랜서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프리랜서의 고객관 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프리랜서는 혼자 일하는 것 같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데요, 이번 김정현 에디터의 에세이를 통해 고객과의 거리, 그 안에서의 세세한 요구사항을 챙기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프리랜서의 공감 어린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프리랜서는 골방 철학자가 아니다. 의뢰인의 요구에 맞춰 업무를 수행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받는 노동자다.

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렇다. 착각의 유통기한이 허무할 정도로 짧은 것도 그래서다. ‘~할 것이다’라는 막연한 추측은 시도와 실행의 단계에 진입하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프리랜서라는 노동자 신분을 둘러싼 오해와 착각도 마찬가지.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보면 알게 된다. 이쪽 세계에도 이쪽 세계 나름의 생리와 그에 따른 크고 작은 고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얼마 전 P가 말했다. “아무래도 프리랜서로 일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저는 혼자 있는 게 제일 좋은 극내향인이거든요.” 그는 퇴사의 기로에 서 있었다. 다음 행보로 이직이 아닌 프리랜서 도전을 고민하면서. 나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입을 떼려다 가까스로 숨을 한 번 크게 쉬었다. 자라나는 새싹의 동심을 무참히 짓밟는 고약한 어른 행세를 해서는 안돼. 대신 말투는 상냥하지만 표정에는 영혼이 없는 상담원처럼 나긋나긋 질문을 던졌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해야 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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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일하는 게 좋아서 프리랜서를 하고 싶다는 사람은 신중해야 한다. 프리랜서는 골방 철학자가 아니다. 의뢰인의 요구에 맞춰 업무를 수행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받는 노동자다. 여기에는 일감을 던져주는 사람이 있고 결과물이 세상에 나오도록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며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후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이 있다. 프리랜서 주변에는 온통 사람뿐이다! 그들과의 커뮤니케이션, 그들과의 밀고 당기기, 그들과의 하하호호 이러쿵저러쿵 주거니 받거니 관계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 이것이야말로 프리랜서의 기본적인 자질인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나의 고객이고 모두가 나의 협업 파트너라는 냉엄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우리는 지속 가능한 프리랜서로 남을 수 없을 것이다. 


클라이언트와 직장 상사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 그와 나 사이에 놓인 거리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와 나 사이를 잇는 계약의 헐거움이다. 프리랜서는 언제나 ‘임시’의 상태에 놓인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우리 관계도 (당분간은) 끝이라는 뜻이다. “당신은 우리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라는 말은 본선 무대 진출이 간절하나 실력적 한계가 뚜렷한 쇼미더머니 참가자만 듣게 되는 대답이 아니다. 동등한 협업 관계로 일하지만 한 챕터가 매듭지어질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작별과 선택의 순간. 기회는 증명하는 자의 것이고, 매번 다른 사람에게 새롭게 증명해야 하는 노동자가 프리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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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불가한 압도적인 실력과 스타성을 보유한 ‘탑 티어’ 포지션의 좌석 수는 한정적이다. 치열한 고민과 노력으로 업무 퀄리티를 높여가는 과정이야 기본이지만 그 과정을 거친 모두가 업계 스타가 될 수는 없다. 주제 파악이 빠른 내가 선택한 건 신뢰할 만한 파트너로 남는 쪽이다. 고객 여러분이 떠안아야 할 리스크를 줄여드리는, 나는야 프리랜스 에디터계의 시몬스. 지난겨울 동종업계 선배 L에게서 들었던 칭찬을 잊지 못하는 이유다.


“같이 일하면서 정현 씨가 참 꼼꼼하다고 생각했어. 구체적인 질문을 많이 하더라고. 어떤 형식의 자료를 어떤 폴더에 넣으면 되는지, 사진은 어떤 방식으로 찍으면 되는지 등등. 마감 기한 지킨 것까지 내가 경험한 김정현 에디터는 매우 안정적인 파트너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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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프로다운 냄새를 풍기고 싶어서, 내 기준에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어서 챙긴 디테일이 상대에게는 안정감을 심어줬다. 의도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서로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간과하지 말아야 할 포인트가 있다. 프리랜서의 주요 역량 중 하나가 ‘일이 되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 출발점을 떠난 프로젝트가 엉뚱한 방향으로 돌아가거나, 휩쓸리거나, 고꾸라지지 않고 탈 없이 종료될 수 있도록 주어진 몫을 다해야 한다. 내 이름 달고 나오는 결과물인 만큼 남들이 인정해 줄 만한 수준으로 품질을 끌어올린다? 좋다. 멋진 자세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프리랜서는 골방 철학자도 순수 예술가도 아니다. 함께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외부 파트너이자 용역 노동자일 뿐. 협업자의 보람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불편은 최소화해야 할 책임이 내게도 있다. 책임을 다하기 위해, 우리의 부드러운 순항을 위해 나는 세세한 요구사항을 챙기고 산출물의 유형과 톤앤매너를 확인하며 마감일을 지킨다. 신속한 답장은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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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순항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싶게 만드는 순간도 찾아올 테다. 먼저 예의를 밥 말아먹은 건 그쪽이야! 외치며 중도 포기를 선언하고 싶은 날이 왜 없을까. 하지만 나는 다음 달에도 다음 해에도 프리랜서로 생업을 이어가고 싶은 사람이다. 멘탈이 흔들릴 때면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두 개의 문장을 되새긴다. 1) 그럴 수도 있지. 2)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른다. 


마지막까지 한결같이. 싫은 소리도 정중하게. 감사와 사과의 표현은 정확히. 첫 만남부터 마무리까지 존중과 예의를 갖춰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프리랜서가 놓쳐서는 안 될 가장 유효한 생존전략이리라. 그건 내가 순간의 감정으로 일을 그르치지 않는 엄연한 프로라는 표현이자 업무와 관련된 인연 하나하나를 진중하게 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어필이기도 하다. 누가 신경 쓸까 싶은 부분도 누군가는 주시한다. 그 누군가의 누군가는 적절한 때에 반가운 연락을 줄 테고, 나는 잠시나마 한 배를 탄 그들과의 여정을 즐겁게 시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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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종료된 후에는 ‘제가 이런 걸 했습니다~’ 하고 인스타그램에 소식을 공유하는 편이다. 그때 빼먹지 않고 기재하려 하는 게 협업 담당자의 이름과 아이디다. 김정현이라는 작업자를 발견하고, 업무를 제안하고, 직장 상급자와 프리랜서 사이에서 균형 있게 눈치를 보며, 작업물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바쁘게 뛰어다닌 사람(그리고 비용 지급까지 살뜰히 챙겨준 사람). 실무자를 향한 감사의 샤라웃까지 마치고 나면 이 애증의 프로젝트가 정말 끝났다는 기분이 들어서일까.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우리의 만남은 뒤로 한 채, 나는 여전히 진행 중인 레이스로 시선을 옮긴다.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인연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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