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로 사는 법ㅣ영감은 받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
프리랜서가 아이디어를 얻는 노하우
2024-09-20
「프리랜서로 사는 법」에서는 김정현 프리랜서 에디터가 들려주는 프리랜서만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자유롭지만 불안한 밥벌이에 대한 고충을 통해 프리랜서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프리랜서의 원동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러분들은 일을 할 때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일하고 있나요? 내 일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할 땐 어디서 원동력과 동기를 얻나요? 이번 김정현 에디터의 에세이를 통해 일을 할 때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하는 프리랜서의 공감 어린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N잡러 프리 워커가 알려주는 7가지 성장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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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처럼 하릴없이 사이버 세계를 배회하는 중이었다. 마감이 닥친 원고는 몇 시간째 빈 문서 상태로 방치됐다. 그 와중에 이런 걸 발견했다. 눈길을 붙든 제목을 두어 번 소리 내 읽었다. N잡러와 프리워커와 성장 공식 모두 구미가 당기는 키워드였다. 심지어 3가지도 5가지도 아닌 7가지라니. 선배님의 비책(祕策)은 무엇인가요. 그러나 나는 끝내 클릭하지 않았다. 혼잣말만 중얼거릴 뿐이었다. 어림도 없지 어딜 감히! 유혹을 이겨낸 나는 의기양양한 코웃음을 치며 유튜브에 접속했다.
언제부턴가 나는 일에 관한 콘텐츠를 피하는 경향이 있다. 인터뷰, 카드뉴스, 책, 영상 가릴 것 없이 ‘일을 잘하는 법’이나 ‘생산성 높이기’ 같은 이야기와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둔다. 각종 비즈니스/커리어 분야 콘텐츠를 손에 잡히는 대로 소비하던 시기를 생각하면 스스로도 의아하다. 하도 많이 접해서 더 이상 새롭게 흡수할 만한 걸 못 찾겠다기에는 나는 그렇게 열심히 산 적이 없다. 휴식도 갖지 못한 채 치열하게 달려오느라 번아웃이 왔다고 하기에도 나는 그렇게 열심히 산 적이 없다. 그냥 귀찮은 것 같다. 일하기도 싫어 죽겠는데 왜 일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찾아보는가. 요즘의 나에게 성장이나 영감이나 인사이트 따위는 매력적인 주제가 아니다. 생계유지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면 모를까 커리어 강화에 대한 고민은 시든 지 오래다. 그런 내 상태를 알아주기라도 하라는 건지, 서점 매대에서 지인의 인스타그램에서 유튜브 피드에서 일 이야기가 튀어나올 때마다 나는 시위하듯 외면해 버렸다.
지인들은 뭔가 이상하다 생각할 것이다. 일에 관한 콘텐츠를 기피한다면서 인스타그램에 꼬박꼬박 일했다고 호들갑 떠는 건 뭐죠. 이번에 이런 작업 했어요, 저런 프로젝트 맡았어요 주 3회 업로드하는 건 일에 학을 뗀 사람처럼 구는 것과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청탁받아 먹고 사는 프리랜서로서의 존재감을 잃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변명도 구차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는 자부심을 느낄 때는 언제고 동태 같은 눈깔을 하고서 ‘이게 맞나…’ 한숨 내쉬는 모습이란. 일이 싫다며 고개 돌리는 동시에 내 성과를 좀 봐달라고 떼쓰는 유아적 행태에 나는 적지 않은 혼란을 겪었다. 열심히 안 하는 내가 한심한데, 열심히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현실이 원망스러운 나. 어떤 굴레에 갇힌 기분이었다.
엄주 작가의 『재능을 돈으로 바꿀 수 있을까』는 프리랜서 창작자의 절망과 희망을 다룬 책이다. 13년 차 프리랜서 그림 작가인 그녀가 좋아하는 그림을 업으로 삼고 살면서 느낀 여러 종류의 기쁨과 슬픔을 나눈다. 그녀 역시 나와 비슷한 고민 내지는 괴로움에 시달렸던 것 같다. 혼자서 모든 걸 책임지며 스스로를 경영해야 했던 프리랜서 라이프가 녹록지 않았을 거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과 압박을 안겨줬을 때는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헛헛함을 느끼기도 했겠지. 그러나 엄주 작가가 나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그녀는 내면의 대화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창작의 시작은 곧 내면의 대화이고, 그 대화를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계속 살펴보고 그 질문에서 촉발된 여러 주제들을 다루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세련됨을 찾는다. 반면 직면을 어려워하고 외면과 회피를 거듭하며 살아온 사람들은 자기만의 ‘왜'라는 질문이 없다. 직면과 성찰, 반성으로 내면을 단단하게 만든 사람들이 빚어낸 작업물을 보고, 과정은 지우고서 그 껍데기만 쉽게 가져오고 싶어 한다.”
엄주.『재능을 돈으로 바꿀 수 있을까』.위즈덤하우스. 2024
이건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일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당사자다. 특히 “직면을 어려워하고 외면과 회피를 거듭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라는 대목에서 나는 옆구리를 찔렸다. 필요한 과정은 미뤄둔 채 번쩍번쩍 빛나는 껍데기만 가져오고 싶어 군침 흘린 날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쉽게 얻고 싶은 욕망 앞에서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왜'라는 질문은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무겁다는 이유로 피하면서 마이크가 쥐어질 때는 똥폼을 잡았다. 저는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일하는 프리 워커/인디펜던트 워커입니다!
정말? 정말 나는 완벽한 주도권을 가지고 일해왔다고 할 수 있을까.
지난 7월부터 진행 중인 심리 상담에서도 동일한 화두를 다루고 있다. 선생님은 눈을 맞추며 거듭 말한다. “정현 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요. 더 알아야 하고 더 이해해야 해요.” 몇 년 전만 해도 콧방귀로 대꾸했을지 모르겠다. 나는 나에게 관심이 많고, 충분히 잘 알고, 우리는 친하다고 생각했으므로. 안타깝게도 내 시선은 여전히 바깥에 묶여 있다. 그럴듯하다고 여겨지는 이상적인 상을 만들어 거기에 나를 끼워 맞추려 안간힘을 쓰면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나를 책망하며, 그런 자신에게 실망하며, 무력감에 젖어 드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비관하지 않는 건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단순히 일에 한정된 사안이 아니라는 걸. 타인의 시선과는 상관없는 나만의 순수한 즐거움을 들여다보는 것, 일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가치와 신념을 고민하는 것은 생계유지나 커리어 확장의 차원을 넘어 삶의 방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다. 중요한 만큼 어렵지만, 어려운 만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버티는 자만이 큰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수입이 오르거나 업계 내 인지도가 높아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결실을.
그러니까 일의 동력이 될 만한 유용한 레퍼런스를 쫓아다니는 건 나중 문제다. 내 삶은 어떤 궤적과 경로를 만들어 갈 것인가. 그 길을 걸어가며 남기고 싶은 기억은 무엇인가. 어떤 일을 하게 되더라도 끝끝내 지켜내고 싶은 사명이 있는가. 오래도록 품을 질문을 던지는 게 먼저다. 삶을 주도적으로 누리고자 하는 의지와 성찰 없이 일이 가져다줄 콩고물에만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나는 공허했다. 이제는 채우고 싶다. 의미를. 명분을. 가치를. 인생을 더 잘 살고 싶다는 얘기다.
생계에 대한 두려움,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한 애정, 목표한 바를 달성하는 성취감. 엉덩이를 떼고 일을 시작하게 하는 요소는 이런 것들일 테다. 그럼 시작한 일을 흔들림 없이 지속하게 하는 요소는? 매 순간 흔들리며 살아가는 나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다. 방법은 간단하다. 나는 평생 흔들릴 수밖에 없는 놈이라는 걸 인정한다. 바꿀 수 없는 건 내버려두고 진짜 필요한 질문을 던진다. 답을 찾는다. 또 질문을 던진다. 열심히 찾는다. 그뿐이다.
“인생의 시기 중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시간을 갖고 생각할 노력조차 하지 않고 외양에 일관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더 공허하게 만들 뿐이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내 삶의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등의 철학적 질문이 스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것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답을 찾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성장한다.”
엄주.『재능을 돈으로 바꿀 수 있을까』.위즈덤하우스.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