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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일로, 쉼을 쉼으로 대할 수 있도록

프리랜서로 사는 법ㅣ프리랜서가 바라는 워라밸

2024-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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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일 안 하고 살고 싶다. 얼마나 행복할까?”



연금복권 1등에 당첨된 사람의 얘기를 들었다. 20년간 매달 546만 원이 들어온댄다.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어도 통장에 500이 넘게 꽂히는 삶이라니. 부러움은 머지않아 상상의 나래로 이어졌고,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나는 구체적인 소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분기별 해외여행, 가격 확인 없이 주문하는 식사, 부모님 용돈, 두 달에 한 번씩 호캉스…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어도 500이 넘게 꽂히는 통장 주인의 배포는 대단했다. 그리고 그 망상의 끝에 나는 앓는 소리를 하기에 이른다. 내가 일을 얼마나 하기 싫어하는지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며.

카페 전경 사진

진심이었다. 굶어 죽을 걱정만 없다면 일 안 하고 살아도 행복할 것 같다. 근심과 불안이 사라지고 얼굴에 생기가 돋아나며 매일 눈을 뜨는 순간이 산뜻하게 다가오겠지. 미워했던 사람이 호감으로 바뀌고 평소라면 하지 않을 것들을 거리낌 없이 시도할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그들에게 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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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동료들에겐 일 같은 건 안 하고 살고 싶다며 한숨을 뱉는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테다. 피차 마찬가지다.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스스로를 워커홀릭이라 여겼다. 지금 와서 보면 가소롭기 짝이 없으나 그땐 그랬다. 저도 제가 순수하게 일을 좋아하는 타입의 인간인 줄 알았다니까요. 주제도 모르고.


이제는 안다. 나는 일이 아니라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목적과 맥락에 맞는 미션을 완수하여 이에 상응하는 수당을 받는 프로페셔널의 작업 말고, 그냥 노는 게 좋다. 볕 좋은 날 거리를 쏘다니다 커피 한 잔 마시며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극장과 미술관을 찍고 한적한 식당으로 넘어가 친구와 수다를 떠는 시간이.

카페 작업 사진

생산적인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사람을 모으고 함께 머리를 맞대 작당 모의를 벌이는 과정이 즐겁다. 어설퍼도 어찌저찌 결과물을 만들어 그걸 동네방네 공유하는 기쁨을 포기하지 못한다.


혹자는 반문할 테다. 다들 비슷하지 않나요? 솔직히 일하는 걸 누가 좋아해요. 그럼 나는 답한다. 아니요. 저는 ‘진짜’인 사람들을 몇 알고 있지요. 일에 미친 사람들은 실재한다.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데서 희열을 느끼고, 어려운 도전에 성공해 목표 이상의 매출을 달성해 얻은 성취감을 동력으로 살아가는 이들. 그 집단에 내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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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A는 내가 신기하다고 했다. 어쩜 그렇게 ‘성실하게’ 놀 수 있냐고. 그는 결이 다른 사람이다. 노는 것보다 쉬는 게 더 좋다. 집에 있고 싶어 한다. 웬만하면 침대에서 빠져나오지 않고 싶어 한다. 외출하더라도 혼자 보내고 싶어 한다. 웬만하면 약속이 안 잡히길 소망한다. 일 벌이지 않고, 다이나믹한 이벤트 없이, 무탈하고 평탄한 일상을 꾸리고 싶어 한다. A에게는 그게 행복이다.



나도 쉬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다. 게으르고 나태한 천성 어디 안 간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비생산과 쓸모없음의 끝을 달려보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안다. 다만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온몸이 근질거리는 성향도 같이 타고났다는 게 A와 나의 다른 점이다. 다양한 장소에 방문하고, 이벤트를 즐기고, 사람들을 만나고, 자극을 받고, 천천히 곱씹어 보면서 나는 일상의 활력을 얻는다. ‘우리 재밌는 거 해봐요’ 같은 말을 습관적으로 뱉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실제로 성사되는 케이스는 적어도 말할 때만큼은 진심이다. 판을 벌이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방면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좀처럼 포기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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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게 ‘해야 하는 일’이 되는 순간 마음속 불씨가 급격히 사그라든다는 것이다. 생계유지의 영역으로 진입하자마자 “어우, 하기 싫어”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내가 가진 성실함은 노는 데 국한돼 있다는 이토록 잔인한 현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고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배고픈 베짱이가 낫다고 믿어왔지만 걱정이 하나도 안 된다면 거짓말이다.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베짱이형 인간은 무슨 수로 생존을 이어 나갈 것인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고 싶은 이 철없는 서른한 살 털보남이여…


어쩌면 일과 삶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서일까? 요일과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프리랜서의 숙명일지도. 일과 멀어지고 싶을 때 미련 없이 돌아서지 못하는, 단호하게 셔터를 내리지 못하는 내 일상엔 사실상 출퇴근 개념이 없다. 가끔은 일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새벽에도 일한다. 주말에도 일한다. 놀러 가서도 일한다. (대체 어떤 작자가 ‘워케이션(work+vacation)’이란 용어를 만들었단 말인가)정확히는, 그럴 가능성이 존재한다. 언제 어디서든 업무에 돌입할 스탠바이 상태를 항시 유지할 것. 자유롭게 일하는 듯하지만 보이지 않는 속박이 따라다니는 이 아이러니야말로 프리랜서의 기쁨과 슬픔 리스트 속 최상단을 차지하기에 충분한 속성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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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리 피곤하게 사나. 투덜거리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마다 되뇐다. 네가 선택한 삶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삶도 있겠으나 둘 중 하나는 성에 차지 않는 토끼일 확률이 높은 게 인생이다. 다 갖고 싶어 하는 건 도둑놈 심보일 뿐. 다 가지려다 빈손으로 잡혀가는 도둑놈 말고 정직하게 작은 거 하나라도 얻어가는 소시민이 되자.


일은 삶의 전부가 아니고 나의 전부도 아니다. 일이 삶을 잡아먹는 것만은 좌시할 수 없기에, 욕심과 강박과 책임감이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훼손하지 못하게 끊임없이 견제하고 지켜낼 테다. ‘일을 제외한 나머지의 삶’이 아닌 ‘일보다 작지 않은 삶’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일을 일로, 놀이를 놀이로, 쉼을 쉼으로 대할 수 있도록.

나는 앞으로도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일 것이다. 동시에 일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일 것이다. 무엇보다… 어느 쪽이든 즐거움 가득한 삶을 사는 게 가장 중요한 사람일 것이다. 행복은 일 안에도 있고 일 바깥에도 있다. 발견하고 만끽하면 그뿐이다. 뭣이 중헌지만 알아도, 그거 하나만 지켜도 일상의 균형은 무너지지 않는다. 내가 유지하고 싶은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는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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