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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라이프

프리랜서로 사는 법ㅣ‘유연하다’고 쓰고 ‘불안하다’고 읽습니다

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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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지 않은 메일을 받았다. 형식적인 인사말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비보는 두 번째 문단에 숨어 있었다. ‘아쉽게도’라는 네 글자에서 눈치챘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김정현 에디터님과의 협업은 이번 달을 끝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지막 인사는 정중했다. 간단히 언급한 클라이언트의 사정 역시 납득 가능한 수준이었다. 해가 바뀌면 기업과 매체는 새로운 연간 계획을 펼치기 마련이다. ‘개편’이라는 칼바람은 방송가를 주름잡는 스타 MC도 피해 가지 못하는 법. 나 같은 조무래기 프리랜서는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다. 우리 관계가 올해도 지속될 거라 착각한 내 잘못이 크다.


프리랜서의 삶은 착각의 연속이다. 기대와 실망의 반복이다. 일은 있다가도 없다. 없다가도 있다. 그게 언제 생기고 언제 사라질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요컨대 나는 매달 조금씩 다른 일을 하고 조금씩 다른 액수의 돈을 번다. 그런 일상을 누군가는 자유롭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불안정하다고 말한다. 둘 다 타당한 소리다.

카페에 앉아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

일정하지 않은 수입은 사람을 구석으로 내몬다. 스텝을 밟으며 천천히 전진하는 베테랑 복서처럼. 묵직한 카운터 펀치가 언제 날아들지 모르는 상황, 그 ‘알 수 없음’이 주는 무력감 앞에서 나는 심리적 압박에 휩싸인다. 올해가 지나면 잔고가 바닥나지 않을까? 어느새 잠재적 클라이언트들의 업무 청탁 대상 리스트에서 내 이름은 사라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일 좀 달라며 비굴하게 구걸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반면에 불안과 긴장이 아닌 안일함의 늪으로 빠질 때도 있다. 이번 달은 손가락 빨았지만 다음 달은 다를 거라고. 분명 더 좋은 제안이 찾아올 거야. 미래의 나를 믿는다며 근거 없는 자신감에 기댈 때면 스스로도 대체 무슨 배짱인가 싶어진다.


프리랜서의 세계로 뛰어든 지 벌써 1년. 불안과 체념 사이를 오가며 어찌저찌 버티는 중이다. 유연해도 너무 유연한 수입 그래프를 놓고 보니 내가 얼마나 무모했는지 알겠다. 첫해는 무사히 넘겼으나 가능한 한 길게 생존하고 싶은데… 다른 프리랜서들은 불안정한 재정 상태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 걸까? 전부 자기만의 계획과 관리 방법이 있을까? 세상 물정 모르는 2년 차 프리랜서에게 시급한 건 다양한 레퍼런스다.

벽돌으로 된 벽을 고양이 한 마리가 걷고있다.

뭔가를 새로 시도하거나 하던 걸 멈추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 현 상태를 파악하는 것. 내 통장에 언제, 어떤 경로로, 얼마가 들어오는가. 시기와 액수를 마음대로 조정할 순 없어도 지속 가능한 프리랜서 라이프를 위한 데이터 축적 정도는 할 수 있다. 그간 내가 뭘 채우고 덜어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 통장의 잔고가 어느 정도인지’ 체크하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카드값이 이 정도 나왔고, 적금을 제외한 예비 자금이 이 정도 있으니, 다 괜찮다는 식의 단순하고 안일한 수준으로. 매달 입금이 예정된 급여를 메모하기는 했으나 정기적으로 꼼꼼히 내역을 정리하는 결산 과정을 거치지는 않았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전월과 비교해 어떤 카테고리에서 얼마나 늘고 줄었는지, 수입의 증감 추이를 인지하기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외주 업무는 입금 시기가 제각각이다. 계약 후 작업을 착수한 시점과 실제로 돈이 들어오는 시점의 간극이 커질수록 일목요연한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나의 계좌는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에디터로 일하는 5년 차 프리랜서 H는 월말이 되면 본격 총무 모드에 돌입한다. 이번 달에 실제로 얼마가 들어왔는지 항목별로 기입해 전월 내역과 비교해 보는 것이다. 차이를 발견하면 이게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일일이 대조한다. 다음 달 작업 계획에 참고하기 위해 그 사유를 기록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굴다리 아래를 걷는 사람의 이미지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 11년 차 프리랜서 J는 체계적인 방어(?) 시스템을 구축했다. ‘내 돈을 나로부터 지킨다’라는 기치 아래 통장을 5단계로 쪼개서 관리한다. 정기적으로 빠져나가는 필수 지출용 통장부터 목에 칼이 들어와도 건들지 말아야 할 최후의 통장까지, 그는 나약한 의지 대신 견고한 계좌 수비대를 믿는 쪽을 택했다. 


한편 영상감독 W는 2018년부터 일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프리랜서 전선에 뛰어든지는 1년이 좀 넘었는데, 스스로 생각하기에 아직 꾸준히 합을 맞추는 장기 파트너가 없고 프로젝트 제안도 띄엄띄엄 들어오는 편이다. 다만 영상 분야의 특성상 프로젝트 규모에 걸맞은 큰돈이 한 번에 들어오고 또 다음 작업까지 기약 없이 쉬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 돈이 들고 나는 흐름을 명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가 생산성 툴 ‘노션 Notion’을 활용해 프로젝트명과 계약 금액, 진행 일정과 입금일 등을 기입하는 목록을 만든 이유다. 이 기록은 월간 지출 계획의 기준이 되어줄 뿐 아니라 본인이 참여한 프로젝트를 시기별로 정리한 작업 아카이브로도 기능한다.

카페에 앉아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의 뒷모습이 보인다.

현실 파악을 했다면 넥스트 스텝을 만들 차례다. 파악한 현실이 안쓰럽고 비루하다면… 서둘러야 한다. 고백하건대 나는 회사에 다닐 때보다 돈을 적게 번다. 그냥 적은 게 아니라 멀어도 한참 먼 수준이다. “그럼 회사 다닐 때는 많이 버셨나요?” 묻는다면 장내가 숙연해질 테니 더 묻지 않아 주시면 좋겠다. 현재의 수입으로 프리랜서 생활을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는 점이 포인트다. 멀리 보고 가는 길이라지만 이 또한 최소한의 안전이 확보될 때 성립 가능한 것. ’부수입 창출’이라는 대안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많은 프리랜서가 비슷한 고민을 한다. 나랑 다른 게 있다면 그들은 빠르게 실행 단계로 넘어갔다는 거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창업을 하고, 재테크를 하면서. 그도 아니라면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국가 지원사업의 혜택을 얻어가면서. 불안 관리가 뭐 대단한 게 아니다. 걱정할 시간에 움직여서 육체적/지적 노동을 수행하면 그만이다. 본업으로 살릴 수 없는 통장 잔고를 부업으로 심폐 소생하면 붕 떠 있던 마음도 금세 가라앉는다.


J는 혼자 일하기 시작한 초반에 카페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주일에 이틀, 커피를 내리고 손님을 응대함으로써 확보한 최소한의 고정 수입은 초조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동시에 그의 독립성을 보장했다. 창작자의 자존감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들어오는 일을 취사선택할 수 있었으니까. 돈 때문에 타협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큼 창작자에게 의욕과 영감을 제공하는 게 있을까?

카페에 앉아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의 뒷모습이 보인다.

무인점포를 창업한 W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권유를 받았을 때만 해도 본업인 영상 제작이 소홀해지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부업으로 얻은 소득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야말로 평소 해보고 싶었던 작업을 시도하게 도와준 든든한 기반이기 때문이다. 일에 방해받기는커녕 하고 싶은 일을 더 하고 싶도록 나를 추동하는 훌륭한 동기부여. 매일 2번의 점포 관리 일과가 하루의 중심을 잡아주는 루틴으로 굳어진 효과는 덤이다.


나는 프리랜서의 최우선 과제가 변수 대응이라고 생각한다. 예상치 못한 시작과 끝, 대비하기 어려운 유지와 변화를 조직의 울타리 없이 스스로 정리하고 처리하는 일. 어쩌면 우리는 주 7일 내내 ‘위기관리’에 총력을 쏟고 있는 게 아닐까? 불안한 건 당연하다. 메일 한 통에 새어 나오는 웃음과 눈물은 누구라도 막기 힘들다. 중요한 건 망설이지 않는 것이다. 머뭇거리느라 정체되지 않는 한, 다가오는 모든 일이 기회가 될 수 있다.

낡은 의자

통제 범위를 벗어난 일상에서도 자기가 내디딜 수 있는 최소한의 걸음을 꾸준히 옮기는 사람. 어렵고 번거롭지만 ‘하는 만큼 온전히 내 것이 된다’는 숙명을 받아들이며 내가 나의 경영지원팀을 자처하는 사람. 그런 이들이야말로 탁월한 프리랜서다. 당장의 기분에, 눈앞의 숫자에, 타인의 시선에 매몰되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멀리 그리고 넓게 볼 것이다. 그러기 위해 거듭 질문할 것이다. 나는 왜 프리랜서로 일하고 싶은가? 목적과 이유를 묻는 과정에 가야 할 방향이 나타나리라 믿는다. 내가 혼자 일해서 얻고 싶은 게 무엇일까. 회사로 돌아가면 무엇을 잃게 될까. 나는 올해 내내 이 고민을 이어갈 것 같다.

김정현

작가 겸 에디터


에세이 「나다운 게 뭔데」를 썼다.

유튜브 채널 '현정김'을 운영한다.

디지털 미디어 <디에디트>와 뮤직&라이프스타일 매거진 <BGM>의

객원 에디터로도 활동 중이다.

어떤 분야든 은근슬쩍 내 이야기를 끼워 넣을 때 가장 즐겁다.

필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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