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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로 사는 법ㅣ프리랜서가 독립적으로 일한다는 건

2024-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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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택은 나를 또 어떤 기회로 데려가 줄까



분명히 해야겠다. 나는 ‘유리 멘탈’이다. 기분이 자주 롤러코스터를 탄다.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더 심해졌다. 지난 1년간 불안과 초조는 늘 나와 함께 했다. 그러니까 이 글은 프리랜서 동료들에게 뭔가 대단한 걸 알려주는 글이 아니다. 스스로를 향한 일종의 자기 암시다. 


나는 주식 투자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엄두도 못 냈다. 이유야 여러 가지다. 먼저 여윳돈이 부족하다. 카카오가 어쩌고 삼전이 저쩌고 애플과 테슬라가 블라블라 할 때 다만 궁금했을 뿐이다. 다들 돈이 어디서 나는 거야? 아주 최소한의 예・적금을 넣고 나면 내 통장은 빈약해지는데. 가진 돈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그러기엔 재테크 지식이 턱없이 부족했다. 숫자와 담쌓고 살아온 지 오래다. 그래도 필요하니까 공부하지 그랬냐고? 그러기엔 나는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게으르다. 덕분인지 때문인지 내가 손해 본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같은 이유로 내가 이득 본 것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굴다리를 걷는 사람의 사진

주식 투자와 관련해 유일하게 인상에 남았던 말이 있다. 돈 넣었으면 잊어버려. 주식으로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다. 얼마나 벌었는지 모르겠지만 한때 주식에 빠져 있던 친구 A도 마찬가지였다. “투자했으면 더 이상 신경 쓰지 말고 내버려두는 게 최고야. 일확천금 노려서 단타로 치고 빠질 게 아니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그래프를 들여다보는 건 무의미해.” 충분히 고민해서 매수했으면 충분히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내 주식을 믿고, 멀리 보면서, 일희일비하지 말 것. 


이게 정말 효과적인 전략인지는 나도 모른다. 주식부심(주식+자부심) 강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거다. 다만 앞으로도 주식에 손대지 않을 것 같은 내게도 와닿는 명제가 있다. ‘투자는 믿음이다’. 시야를 넓게, 멀리 두고 내가 택한 종목을 믿는 것이다. 어떤 상향 곡선을 뻗어나갈지 기대하되 집착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다.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전전긍긍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리는 태도. 이건 주식을 사고파는 문제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소속 없이 자유롭게 일해나가는 프리랜서 생활에도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작은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여자 사진

작년 3월에 나는 직장인이 될 뻔했다. 프리랜서가 된 지 세 달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오랜 시간 동경해 온 회사에 자리가 생겨 적극적으로 들이대 기회를 잡았다. 1차 서류 통과. 2차 (무려 2시간가량의) 면접 통과. 마지막 3차 임원 면접만 남았다. 그러나 나는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죄송하지만 남은 면접은 포기하겠습니다(최종 합격한 것도 아니면서 엄청 비장했다). 사실은 지원 과정 내내 고민했던 것이다. 지금 다시 회사에 들어가는 게 맞을까? 이왕 혼자 일하기로 한 거 조금 더 밀어붙여 봐야 하지 않을까. 퇴사를 결정하던 당시를 돌아보며 선택의 기로에 섰다. 직장인의 안정성이냐, 프리랜서의 가능성이냐. 결국 후자를 택한 3개월 차 프리랜서는 5개월을 넘고 7개월을 통과하며 이따금 지난날의 선택을 곱씹었다. 잔고를 확인하며 눈물이 찔끔 났던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후회하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었으니까. 그 순간에 가장 끌리는 길로 갔을 뿐이다. 


신기하게도 재취업의 문을 제 발로 걷어찬 그달에만 3건의 새로운 일이 들어왔다. 틈틈이 프리랜스 에디터로 일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인터뷰 요청이 오기도 했고, 일본의 한 유명 잡지로부터 연락을 받아 담당자와 미팅도 가졌다. 단순히 커피 한 잔 마시고 끝나는 게 아닐 거라 직감해 열심히 이런저런 내용을 준비해 갔더니 결과적으로 서울을 다루는 특집호 지면에 내 이름과 얼굴이 실리기까지 했던 건 5년 치 안줏거리다. 그때 체감했던 것 같다. 일이란 건 내 예상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구나. 많을 때든 적을 때든, 시작할 때든 끝날 때든. 회사 다니던 시절의 일과가 속도를 제어할 수 없는 레이싱 같았다면 밖에 나와 혼자 일할 때의 일과는 언제 어디서 누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범퍼카 같다. 범퍼카는 혼란스러운 만큼 짜릿하다.

야경

지금 하는 이 일이 또 어떤 일로 연결될지 모른다. 나는 이 우연의 가능성이 프리랜서라는 노동자 유형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조직에 소속되지 않은 채로 다양한 고용주를 만날 수 있는 환경, 심지어 스스로 고용주가 되어 독립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할 수 있는 상태는 자유도 높은 넥스트 스텝을 보장한다. 어느 방향으로 내딛을지는 내가 정하면 될 일이고, 그 첫걸음을 누가 어디서 어떻게 봐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눈치 주는 상사도 질투하는 동기도 내 옆에 없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면 안 된다는 겸업 금지 조항도, 여기서 1년만 더 버티면 과장 자리가 보장돼 있다는 암묵적 규칙도 나와는 무관하다. 때때로 그 무방비의 불안감이 엄습해 오지만 원래 미래는 불안한 거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저 혼자 비련의 주인공이 될 이유가 없다. 나를 더 먼 곳으로 데려가 줄 현재의 투자를 믿어보는 쪽이 비교도 안 되게 생산적일 것이다.

잡지 사진

독립적으로 일한다는 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뜻. 더 자유로워졌다는 건 그만큼 책임의 범위도 넓어졌다는 의미다. 그래서 온전한 내 몫의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행보의 기준을 내 안에 둬야 한다. 그래야 신뢰할 수 있으니까. 내가 내린 크고 작은 결정의 모음은 다른 누구의 조언과 충고보다 든든한 레퍼런스다. 스스로 재취업 기회를 날린 2023년 초봄의 김정현 씨가 고마운 이유다. 다음으로 중요한 건 진취성. 뭐라도 시도해야 뭐가 됐든 결과가 나온다. 실행이 곧바로 기회를 가져오는 건 아니지만 작은 연결고리 정도는 만들 수 있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와의 연결고리를 늘려나간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일들을 시도하는 중이다. 이 선택과 시도를 향한 맹목적인 믿음이 들쭉날쭉한 월수입의 공포를 겨우 막아준다는 것을 안다.

잡지 사진2

조만간 새로운 투자가 예정돼 있다. 카메라를 살 테다. 내가 만드는 콘텐츠 사진의 퀄리티를 한 단계 높이기 위해서. 100만 원 내외의 제품으로 생각 중인데 부담되지 않는 금액이라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이 소비가 품은 잠재력과 카메라 구입이 창출할 부가가치에 기대를 걸어본다. 이전보다 좋은 사진을 찍게 됨으로써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볼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에. 이 결정은 나를 또 어디로 데려갈까? 어디로 갈지 차분하게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혼자 일해야겠다.

김정현

작가 겸 에디터


에세이 「나다운 게 뭔데」를 썼다.

유튜브 채널 '현정김'을 운영한다.

디지털 미디어 <디에디트>와 뮤직 &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BGM>의 객원 에디터로도 활동 중이다.

어떤 분야든 은근슬쩍 내 이야기를 끼워 넣을 때 가장 즐겁다.

김정현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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