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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라이프

프리랜서로 사는 법ㅣ나는 멋있는 집에 살지 않는다

2023-12-29

썸네일

나는 온라인 집들이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집을 배경으로 인터뷰 사진을 찍자는 제안도 모두 거절했다. 앞으로도 ‘룸 투어(Room Tour)’니 ‘홈터뷰(Home+Interview)’니 뭐 그런 걸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적어도 새로운 집으로 옮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프라이버시 때문이 아니다. 나 관심받는 거 좋아한다. 귀찮아서도 아니다. 나 내 얘기 하는 거 사랑한다. 뻔뻔한 의욕이 출격 준비를 마쳤음에도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 사는 집의 모양새가 불특정 다수에게 자랑스레 공개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 내 자취방에는 빈티지 가구가 없다. 공간 구조가 독특하지도 않다.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개성 강한 소품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렇다고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미니멀리즘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대도시에 혼자 사는 30대 초반 남자의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습일 테다. 있을 건 다 있지만 ‘풍성하다’, ‘근사하다’ 말하기는 어려운. 적당히 깔끔하고 적당히 촌스럽다. ‘이야, 역시 여긴 김정현스럽구나’ 할 정도로 개인의 취향이 진득하고 선명하게 느껴지는 집을 기대한다면 번지수 잘못 짚으셨다.

필자의 집 인테리어

짠- 하고 공개했다가는 에게-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의외라고 말하며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반응 정도는 양반이겠지. 코웃음 치며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나올지 모른다.


“카페니 편집숍이니, 인테리어가 어쩌고 디자인이 저쩌고, 바이브 타령 무드 타령 아주 생쇼를 하더니 지가 사는 집은 보잘것없네 ㅋㅋ”


내가 거지꼴을 하고 사는 건 아니지만 일견 일리 있는 말이다. 평소 그렇게 멋있고 감각적인 상업 공간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면서 정작 자기 생활 공간은 등한시한다고 여겨질 수 있지. 나의 일상이 누군가의 눈에는 진짜 소중한 것의 가치를 모른 채 밖으로만 나도는 공허한 발발거림일 테다.


올해 봄부터는 집도, 나도 좀 달라질 줄 알았다. 정을 붙이지 못하던 불광동 집을 미련 없이 떠나 더 나은 조건의 응암동 집으로 옮겼으니까. 게다가 연초부터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던가. 출퇴근 개념이 사라졌으니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겠지? 머무는 시간이 느는 만큼 공간 구석구석을 신경 쓸 테고. 내가 원하는 대로 고치고 꾸미고 채워 가면서 화면 속 삐까뻔쩍한 집들과의 간극을 줄여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필자의 집 전경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인생이다. 이삿짐을 정리한 이후로 딱히 뭘 더한 게 있어야 말이지. 페인트를 칠하거나 새로 가구를 들이거나 벽 한쪽에 초록 식물들을 진열하는 상상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소파와 책장이 들어오면 딱 좋았을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고, 잡다해도 너무 잡다한 물건들은 커피 테이블과 3단 트롤리와 플라스틱 서랍장에 흩어져 있다.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공간을 완성하겠다고 의욕을 다졌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7개월이 흘렀다. 


오해는 마시길. 나는 이 집을 미워하지 않는다. 단지 멋있게 꾸미지 않을 뿐. 기꺼이 남들한테도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치장하고 관리하는 게 아닐 뿐이지 충분히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사실 우리는 사이가 좋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 이유 없이 주변을 떠도는 짓을 나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혼자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거니와, 보여주지 않아도 되고 젠체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쩌면 여러 집을 옮겨 다니며 애타게 바라왔던 것일까? 여기에서만큼은 타인 앞에 전시하고 진열하는 행위와 그 강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고. 동시대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를 다루는 일을 하면서 내 일상조차 콘텐츠 소재로 써먹을 때가 많더라도, 집에만 오면 아무 생각 없이 멍청하게 지내고 싶다고 말이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홍보하고 영업해야 하는 프리랜서의 숙명이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그놈의 퍼스널 브랜딩 자원으로 보인다는 것. 집이라는 사적 공간까지 그 올가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 나는 갑갑했던 것 같다. 내게 로망의 실현보다 시급한 건 개운한 휴식이었다.

집에 있는 필자의 사진

인스타그램 피드가 ‘드러내고 싶은 나’를 담는 플레이트라면, 집은 ‘드러내지 않아도 괜찮은 나'를 품는 밀폐용기다. 내가 원하는 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숨어들 수 있는 곳이다. 영감이란 탈을 쓴 무수한 자극으로부터 벗어나 현재의 필요와 생활 패턴에 집중하게 되는 공간. 화려한 취향 대신 무난한 생활이 여기 있다. 인풋과 레퍼런스와 인사이트는 바깥에 차고 넘친다. 프리랜서 라이프의 좋은 점이 뭐겠어. 시공간의 제약 없이 일하며 언제든 나가서 보고, 만나고, 경험할 수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집에서는 좀 쉬고 싶다. 그 욕구가 제법 해소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는 집을 향한 애정이 한 뼘 더 늘었다. 


아늑하고 평화로운 나의 집. 멋과 힙은 떨어지지만 어차피 나는 당분간 집스타그램을 할 계획이 없다.




김정현

작가 겸 에디터


에세이 「나다운 게 뭔데」를 썼다.

유튜브 채널 '현정김'을 운영한다.

디지털 미디어 <디에디트>와 뮤직 &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BGM>의 객원 에디터로도 활동 중이다.

어떤 분야든 은근슬쩍 내 이야기를 끼워 넣을 때 가장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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