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클라우드, 새로운 무대
송길영 작가가 말하는 ‘휴먼 클라우드 시대, 자동화 이후 인간의 자리'
2025-10-16

☁️ 콘텐츠 소개
로봇이 요리하고, 키오스크가 주문을 받는 시대. 사람의 일자리는 줄어드는 걸까요, 아니면 새로운 무대가 열리고 있는 걸까요? 기술이 일을 대신하는 세상에서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오히려 더 선명해집니다. 휴먼 클라우드는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의 재능을 더 멀리, 더 넓게 펼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인프라입니다.
조직이 없어도, 거대한 자본이 없어도 스스로 일의 방식과 삶의 속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그것이 휴먼 클라우드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결국, 자동화 이후의 세상은 인간을 지우는 세상이 아니라 인간을 다시 중심으로 불러내는 세상일지도 모릅니다.
👉 이번 글에서는 마인드 마이너 송길영 작가가 말하는 휴먼 클라우드 시대 속에서 ‘기술의 시대’를 넘어, ‘사람의 시대’로 가는 여정을 이야기합니다.
작성자ㅣ송길영
마인드 마이너 ·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 저자
휴먼 클라우드 시대, 자동화 이후 인간의 자리
최적화로 향하며 비용을 절감하는 기조는 모든 산업 분야에 고르게 찾아오고 있습니다. 해외에 있는 이들에게 홍대 앞의 햄버거 체인스토어는 반드시 가야 할 곳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주문은 키오스크로, 음식은 로봇이, 찾아서 먹고 치우는 것은 손님이 하는 매장은 해외 방문객에게는 인류의 미래로 인지됩니다. 2016년 시간당 임금이 가파르게 오르며 처음 시도되었던 키오스크는 팬데믹을 거치며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제 조리의 과정까지 로봇이 도입되며 레스토랑의 운영은 자동화의 모든 경험이 축적되고 있습니다. 2025년 외식업과 식자재업을 주력으로 하는 대기업들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외식업 플랫폼 사업과 로봇 조리 분야입니다.
우리의 일상 속, ‘사 먹다’와 ‘해 먹다’의 오랜 싸움이 이제 ‘사 먹다’의 우세로 결정되며 새롭게 뜬 사업은 외식업 창업의 지원 시스템들입니다. 소상공인이나 프랜차이즈업에서 어려워하는 것은 식자재 공급과 레스토랑 운영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콜드 체인으로 전국 물류를 묶어내고 인공지능으로 주문 발주를 수행하며 식자재 공급은 체계화되고 있습니다. 또한 조리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반조리 혹은 완조리 형태로 가공 후 공급하는 밸류체인까지 가세하며 이제 외식업의 창업이 쉬워지고 있습니다. 운영 부분에서도 이미 주문은 키오스크로, 치우는 것은 로봇의 도움을 받아 손님이 직접 하는 방식으로 단순화하였기에 남은 것은 조리의 부분이라 이마저 로봇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원가절감에만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지방의 골프장과 같이 외진 곳에서 문화와 기반 시설 없이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인력난에 어려움을 겪던 업장들은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서라도 미리 준비된 음식을 데워서 내거나 로봇이 조리하는 환경으로의 전환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고령화로 지역의 인구가 더 줄어드는 경우, 이러한 방식이 아니면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의 외식업은 생존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자동화가 남긴 불균형의 사회
이처럼 공급자는 극소화되고 소비자만 남은 시장으로 접어들면 효율의 결과는 균질화와 저품질로 수렴할 수 있습니다. 철 따라 다른 재료를 세밀히 살펴 불을 조절하고 손님에 맞추어 음식을 내는 섬세함은 HMR과 로봇의 품질관리 시스템에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원가의 극소화로 이룬 상대 경쟁력은 사람의 노력에 지급하는 비용이 지속적으로 부담되는 사회를 만들어 낼 것이기에, 이제 사람이 관여하는 산업의 시도가 급감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원가의 구성요소에서 ‘인간’이라는 부분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흘러가면 분배 없이 부가 한쪽으로만 쌓이는 불균형을 초래합니다. 수수료와 광고비를 지속적으로 올리는 음식 배달 플랫폼과 임대료를 받는 건물주만 부가가치를 독식하는 사회로 흐를 수 있음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결국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 상처뿐인 영광을 나누는, 모두가 더 나쁜 상황으로 빠지는 사회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납니다. 그리고 일정 임계를 넘으면 그 미래가 현재로 펼쳐집니다. 예를 들어 취업이 어렵다는 문제도 언제나 졸업 시즌에 나오던 뉴스의 단골 멘트였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직업을 잃고, 내 주위에도 비자발적 실업자가 늘어나면 변화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강제로 쉬는 청년으로 몰린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취업난’이라는 것이 체감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정보로 보다가 현실로 관찰하면 거기에 대한 체감이 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뉴스에서 보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옆집의 사연이라면 더 실감 나게 느낀다는 것입니다. 공기처럼 존재하던 것이지만 체감 못 하다가 희박해져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끼는 듯이 말입니다.
도시를 떠나 삶의 속도를 낮추다
밀집된 인구로 맑은 공기가 희박해지며 숨이 가빠지면 다른 선택을 도모해 보기도 합니다. 도반 J의 지인 중 해외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살아오던 프랑스계 이탈리아인의 이야기가 좋은 예제입니다. 한국에 특별한 연고 없이도 피자를 파는 레스토랑을 잘 운영하던 그는 최근 꽤 잘되던 서울의 업장을 접고 지방 소도시로 이사를 했다고 합니다. 늘 손님이 줄을 서던 레스토랑을 그만둔 이유를 묻자 산이 좋아서라는 답이 나왔다 합니다. 너무나 복잡하고 갑갑한 서울을 벗어나고 싶은 그의 심정에 주변의 많은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혼자서 화덕의 피자를 구워내며 3개의 테이블로 단출하게 영업하던 그에게, 많은 수요가 있다는 서울은 별로 매력적인 곳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어차피 하루에 팔 수 있는 피자의 양은 한정되어 있기에 서울이나 원주나 매출의 규모는 차이가 없습니다.
발전이라 이야기하곤 하는 규모의 확장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으로 목표가 합리화되면 어디에서 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경쟁이 치열한 서울의 권리금과 월세의 비용만 커지고, 무엇보다 과밀한 도시에서 치이며 살아가는 것이 느린 박자의 삶을 원하는 그와는 맞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방식의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지역으로 이동해 새로운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린 책도 있습니다. 작은 도시로 이주한 지 3년 이내의 사례만 모아놓은 책 속 주인공들이 그 이후의 적응과 뿌리내림을 잘하기를 바라는 이들 역시 새로운 선택을 꿈꾸고 있을지 모릅니다.
도시의 끝에서 자연을 동경하다
이러한 새로운 선택이 선망받는 것은, 소도시의 삶이 무엇인가를 내려놓는 일처럼 느껴질 만큼 삶의 편의를 포기하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배민이 오지 않은 지역에서 자급자족은 아니더라도 스스로 세끼를 챙겨 먹고, 정원이나 텃밭을 가꾸는 삶은 유튜버들에 의해 미화되어 전해진다 하더라도 감내하지 못할 것이라 지레 겁을 먹을 만큼, 우리는 생활의 근육을 잃어버린 사회로 진화했습니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만들어낸 보기 좋은 근육은 뙤약볕과 지열의 이중 공격을 견디며 잡초를 뽑고 수확하는 노동에는 최적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르지 않게 타버린 피부의 노화를 막기 위해 흐린 날에도 선크림으로 뒤덮은 피부를 몇 번이고 점검할 만큼 실내형 인간으로 태어나 자란 세대가 지금의 성인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볕을 쬐고 흙을 밟는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한 이들이 매우 용기를 가진 선구자와 같이 인식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의 자녀로 태어나 서울에 상경해서 성공하는 ‘사업가’가 선망되던 시기가 벌써 반세기 지나며 이제는 모두가 도시에서 자라 거꾸로 자연으로 가는 것이 선망되는 상태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제로는 자발적 퇴사를 감행한, 비장해 보이고 멋있는 이들이 눈에 보이는, 그리고 상대적으로 월급을 받으며 남아 있는 내가 소시민 같은 까닭 모를 열등감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과잉 경쟁의 끝, 자동화의 시작
이 경향성 역시 확률과 기댓값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산업화의 초기, 상경은 곧 대박을 향한 출발점과 같았습니다. 새로운 직업을 얻건, 아니면 사업을 하건, 사람이 몰려드는 대도시에 가면 골드러쉬 시절의 미국 서부와 같이 큰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에게 허락된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기에 꿈은 공평히 꾸었습니다. 괜찮다 믿어지는 학교를 나왔거나 특색있는 요리를 잘하기만 해도 부자가 될 수 있던 시절은 무엇이든 투자하고 시도해 보는 것이 옳은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공부해서 손꼽히는 학력을 만드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피자를 만드는 기술 역시 수많은 과정에서 배울 수 있기에 큰돈을 버는 것은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수요는 정체되어 있는데 시장 참여자는 꾸준히 늘어나는 구조로 빠지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공급이 과밀해져 기댓값이 확정되는 순간 다시 과밀하지 않은 곳으로 우리의 시도는 분산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수요가 한정되면 수입 역시 한계에 빠집니다. 월세가 오백만 원이 넘는 가게에서 수입이 더 이상 늘지 않는다면 해야 할 일은 주문받는 일과 결제는 키오스크로 대행하고, 물과 반찬은 셀프로 손님이 직접 받아가야 하는 것 이외에는 선택이 없습니다. 자신이 주방을 맡지 않고 있었다면 조리 역시 로봇이 해야 합니다. 다만 이 경우, 이러한 업장을 레스토랑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미 라면을 셀프로 끓여 먹는 업장까지 나왔기에 극단적인 자동화 업장이 고객들에게 선택받을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혁신도시의 그림자
이미 지역의 혁신도시에는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원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덩그러니 만들어진 고속철 역 근처는 고즈넉한 산세와는 이질적인 주상복합 아파트와 신도시마다 보이는 직육면체의 상가건물로 채워져 있습니다. 동시에 시작한 개발사업은 논과 밭이던 벌판을 새롭게 만든 회색 콘크리트 건물로 바꿔냈습니다. 지방 이전 공기업들이 주위에 포진해 있지만 그 인구가 몇만에 불과해 충분한 수요가 되지 않기에 새로 만들어진 상가는 드문 드문 비워진 상태로 한산합니다. 무엇보다 동시에 개발되어 입주한 업장마저 대부분 프랜차이즈 가맹점입니다. 분양받거나 임대로 들어온 업장 입장에서는 제한된 수요로 경비를 줄이고자 무인 시스템이나 최소한의 인력으로 운영할 수 있는 자동화를 도입합니다. 결국 특색 없는 업장에 낮은 서비스까지 가세하며 상가의 경쟁력은 더욱 저하되는 악순환을 반복합니다. 원도심의 경우는 이중고를 겪습니다. 상대적으로 삶의 편의가 더 제공되는 주상복합으로 원도심 인구가 이주하며 구도심 상권이 붕괴합니다. 작은 경제 규모로도 운영되던 지역의 고유한 업장까지도 영업을 계속하기 어려워지는 재앙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관광은 그 지역만 있는 식당과 특산물 점이 필수적인데 혁신도시 개발로 인해 이러한 노포마저 문을 닫으며 더욱 외지에서 오는 손님이 줄어드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물론 지방의 인구가 계속 줄어들며 이러한 쇠락이 예정되어 있었을 수도 있으나, 더욱 급격한 변화가 이뤄지며 편의성과 자본에서 열위에 처한 원주민의 몰락이 가속화되는 상황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고 또 방지할 수 있었던 것이라 아쉬움이 더욱 큽니다.
효율이 인간을 지운 사회
기회와 비용의 함수에서 지금껏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온 이들에게 어쩌면 마지막 챕터가 펼쳐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세계의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무인으로 팔거나 인생을 몇 컷의 사진으로 남긴다며 스스로 사진을 찍게 하던 것을 넘어서, 라면이 아니라 파스타와 돈가스까지 로봇이 조리해서 스스로 갖다 먹게 하는 살풍경한 업장들이 도시의 상가를 모두 채우게 된다면 더 이상 절감할 비용 따위는 존재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식재료의 수급에서 조리와 서빙까지 모두 로봇이 맡는 근미래가 온다면, 그다음 절감의 대상은 전기료 말고는 어느 것도 어려워질 것입니다. 극단적 부가가치의 감소는 요식업의 노동 시장 참여자 모두가 제거되는 디스토피아로 현실화할 수 있습니다. 그 시점이 우리 사회가 더 이상의 레벨업이 불가능한 상태, 세칭 만렙에 도달한 상태로 볼 수도 있습니다.
서촌의 작은 식당을 사랑합니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가게를 열기 전부터 정돈하고, 웃으며 주문받고, 손님을 위해 정성스레 만든 음식을 나눕니다. 지인과 함께 즐거운 식사를 하고 나오며 맛있었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에서 우리는 한 끼가 아니라 삶을 누립니다. 이러한 일상의 모든 것들이 혁신이나 절감의 대상으로 가는 사회에서 미래의 각자는 어떻게 배려받을지 우리는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절감의 칼끝이 나로 향하기 전, 나의 기여는 어떻게 환급될 것인지 고민하는 지혜로움이 모두에게 필요할 만큼, 혁신의 시계는 갑자기 움직임이 성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전문성을 세상에 펼치는 시대
이처럼 우리 삶 속 인공지능과 로봇이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평균적 노동에 대한 수고로움은 비약적으로 경감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분주한 농번기, 어른부터 아이까지 가리지 않고 서로의 일감을 돕던 협력의 시스템이 더 이상 필요 없을지 모릅니다. 그보다 자신만의 본진에서 기예를 닦아온 이들이 스스로의 전문성을 세상에 내어놓는 세상으로 진화합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 속, 휴먼 클라우드는 먼 미래가 아니라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는 현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거대한 흐름 앞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입니다. 기계와 자동화가 생활을 가볍게 만든다면, 휴먼 클라우드는 나의 재능과 시간을 더 멀리, 더 넓게 퍼뜨릴 기회가 됩니다. 지금 가진 역량을 작게 나누어 포트폴리오로 정리하고, 새로운 기술과 언어를 익히며, 무엇보다 인간만이 줄 수 있는 감각을 더 세밀하게 갈고닦는다면, 누구나 이 무대에서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거대한 조직이 아니어도, 특별한 배경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스스로의 삶을 설계하고 선택할 수 있는 힘, 그것이 휴먼 클라우드 시대가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가장 큰 격려일 것입니다.
전문가들이 프로젝트 단위로 유연하게 협업하는 클라우드형 인력 시스템을 말합니다.
외식업에서는 주문 키오스크, 음식 조리 로봇, 셀프 서빙 등 자동화 시스템이 점점 확산되고 있습니다. 2016년 임금 상승과 팬데믹을 계기로 도입된 키오스크는 현재 거의 모든 외식업 창업과 운영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지방 및 고령화 지역에서는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전 가공 식재료(HMR)와 로봇 조리를 활용하는 추세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자동화·플랫폼화가 진행되며 유연한 협업이 필요해졌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고정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업무 범위와 성과 지표 정의, 소통 구조, 정서적 공감체계 구축이 필수입니다.
자기주도적 업무 수행력, 문제 해결 능력, 프로젝트 단위 결과 중심 마인드가 중요합니다.
휴먼 클라우드는 단계 없이 개인 단위로 문제를 해결하며, 위계보다 역량 중심 구조입니다.
조직과 배경에 구애받지 않고, 개인의 역량을 기반으로 삶과 경력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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