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머리말
제 1장. 들어가며
제 2장. 처음으로 한 일 : 식품의 선정
제 3장. 두 번째로 한 일 : 보호자의 삶
제 4장. 세 번째로 한 일 : 간암에 대한 이야기
제 5장. 네 번째로 한 일 : 항암차 만들기
제 6장. 다섯 번째로 한 일 : 현미차 만들기
제 7장. 항암차의 응용과 이 외의 방법
제 8장. 맺음말
서비스 설명
이 글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1) 간암과 간경화, 간염 등을 동시에 보유한 2~3기 간암 환자의 이야기다.
2) 절제 수술과 간이식,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 고주파열치료 등이 불가능한 간암 환자의 이야기다.
3) 3~6개월의 시한부 판정을 받고, 경동맥화학색전술마저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던 간암 환자의 이야기다.
4) 표적항암제나 면역항암제가 없어서 이 마저도 쓰지 못한 간암 환자의 이야기다.
5) 그리고 이 글은 이 최악의 상황에서 이를 이겨내고 간암을 극복한 사연과 그 방법들을 수록한 한 편의 책이다.
Q1 : 간암 환자들에게 가장 먼저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A1 : 음식에 대한 이야기다. 그 당시 나는 관련 전문서적들과 한의서, 다양한 논문들을 취합해 나가며 간암, 간경화, 간염 환자들이 안심하고 섭취할 수 있는 음식들을 선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식품을 선정했던 이유는 당시 아버님께서 간암과 간경화, 간염 등을 동시에 보유한 환자였고, 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 치료마저 거의 없는데다, 3개월~6개월 밖에 살 수 없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아버님의 상황은 이러했다. 면역력이 정상 수치의 절반 밖에 되지 않았고, 기력이 너무 떨어져 있어서 수술이 불가능했다. 약물은 복용할 수 없었다. 약물의 독성이 간경화를 가속화 시킬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유일하게 복용할 수 있었던 약이라고 해봐야 약국이라면 어디서나 판매하는 대웅제약(주)의 우루사와 베아제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는 간을 심각하게 손상시키는데다 간경화마저 가속화 시키므로 이 치료 또한 받을 수가 없었다.
그 당시엔 고주파치료가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 치료는 1~2cm 정도의 작은 암 덩어리를 치료할 때 사용이 가능한 터라 이 치료 또한 받을 수가 없었다. 이미 간암 덩어리가 탁구공 크기만큼 너무 크게 자라버린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엔 표적항암제나 면역항암제와 같은 치료제마저 없었던 시절이었다. 1999년도 당시엔 이처럼 지금보다도 의학 수준이 현저히 떨어져 있던 때였고 그해 6월엔 전국적으로 의료파업이 일어났던 때라 의료진들의 진료 거부로 인해 민심도 매우 흉흉했던 시절이었다.
간이식을 고려했으나 그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간이식은 당시 15시간 이상 걸리는 대수술이었고 사망 가능성이 90%가 넘었기에 수술 그 자체가 불가능했다.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경동맥화학색전술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또한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담당 전문의는 간암 환자가 사용할 항암제의 양을 1/10~1/20 가까이 줄였고 이것을 희석한 후, 간세포 암에 극소량(한 두 방울)의 항암제를 투여해 보자는 제안을 하였다. 항암제의 양이 너무 적어서 이것으로 간암을 치료할 수는 없지만 잠시나마, 한 달이라도 더 생존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되어 이 방법(색전술)을 선택하였다.
후에 아버님은 조직검사와 색전술을 받기까지 15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 계셨다. 색전술을 받고 난 후, 평범한 암 환자라면 별다른 후유증 없이 지나갈 만한 투여량이었지만 아버님은 이것으로 3주간의 긴 후유증을 겪었다. 그리고 이것이 간암 환자로서 아버님께서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치료였다.
담당 전문의는 아버님께 남겨진 그 몇 달(3~6개월)간의 삶에 대하여, 보호자로 찾아온 나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였다. 그것은 “아버님께 의미 있는 삶과 추억을 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만들어 드리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아버님께서 마음의 준비를 다하고 떠나실 수 있도록 마지막을 지켜드리라”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15일간의 입원 후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님에게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항암식이요법이었다. 그리고 서둘러 국내에 있는 모든 식품 중에서 간암 환자가 섭취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식품을 선정하기 시작하였다.
3,000 종류의 식품 중에, 암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식품은 불과 1%(40~50여 가지)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을 식이요법으로 응용하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기에 자연요법(쑥뜸, 해독, 항암차의 복용, 항암식이요법, 소식, 건식, 온열요법, 복식호흡, 운동요법 등)을 병행해 나갔다. 이와 같은 방법만 진행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후 아버님은 차차 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5개월 후엔 간수치가 정상에 가깝게 호전되었고, 그와 동시에 탁구공만 했던 암세포덩어리도 모두 죽어 있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암세포덩어리의 일부는 가는 실 가닥처럼 말라붙어서 죽어 있었고, 또 다른 일부는 2~3mm로 쪼그라들어 말라 죽어 있었던 것이다.
담당 전문의는 MRI 영상을 여러 번 확인한 후에 이렇게 말했는데, 그 말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항암제라 해도 바늘에서 나온 한 두 방울 쓴 게 전부였고, 제대로 된 항암제도 아닌데다 항암치료를 한 것도 아닌데 암세포가 전부 깨끗하게 사라졌다.”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말을 더 이어나갔다. “암세포가 이렇게 죽은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의학적으로도 결코 해명할 수 없는 신기한 일인데다, 기적이라고 밖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담당 전문의는 내게 “암 환자에게 그동안 무슨 좋은 것을 드시게 했으며, 그동안 암 환자에게 무엇을 했고, 그 방법이 무엇이었는지를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그날 나는 담당 전문의에게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다만 “항상 평범하고도 순한 식사를 드시게 했다.”는 이야기만 전했다.
담당 전문의가 실력이 부족해서 이와 같은 질문을 한 것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그저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기에, 모든 의학기술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있다면 그러한 세계와 실력도 갖고 싶은 것이 의사들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버님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Q2 : 그 후 어떤 과정을 겪었고, 간암과 간 질환 등을 함께 보유한 환자를 위해 시작한 일이 무엇이었는가?
A2 : 그 후, 내가 살던 곳을 어떻게 알았는지 제주도를 제외한 각 지역의 암 환자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결 같은 질문들이 쏟아져 왔다. 어떻게 암을 고쳤는지……. 무엇을 먹고 암이 나았는지……. 암을 고친 특별한 방법이 있다면 혼자만 알지 말고 가르쳐 달라는 질문들이 가득했다. 그렇게 적어도 6개월 동안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다양한 암 환자들로부터 안부와 사연이 이어졌고, 암을 극복하는 방법 등을 묻는 절실한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 이 책의 구성 -
이 글은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부모님의 이야기와 함께 지난 13~14년 동안 두 분을 간병했던 경험을 보호자의 입장에서 수록한 회고록이다. 이 중에서 간암 환자와 보호자를 위해 다양한 어려움에 대처하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방법들을 Q &A 형식으로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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