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라이프

프리랜서로 사는 법ㅣ프리랜서에게 음식이란 어떤 의미일까?

202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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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로 사는 법」에서는 김정현 프리랜서 에디터가 들려주는 프리랜서만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자유롭지만 불안한 밥벌이에 대한 고충을 통해 프리랜서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오늘 점심 뭐 먹지? 직장에서 아마 메신저로 제일 많이 쓰는 말일텐데요, 프리랜서에게 매일 무엇을 먹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먹는지도 생각보다 일에 많은 작용을 한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오늘 김정현 에디터의 에세이를 통해 프리랜서에게 음식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직장인에게 낮 12시는 매일 만나도 그리운 존재다. 출근하자마자 보고 싶은 나의 임이다. 매일 아침 나는 옅은 한숨을 한 번 내쉬며 인사를 건네고 사무실에 들어간다. 파란색 컵에 커피를 한 잔 내린다. 먼저 오는 팀원과 한두 마디 나누고 사무용 의자에 앉는다. 메일함과 슬랙(Slack)을 연다. 잘 쓰지는 않으나 노션(Notion) 화면도 띄운다. 일간 업무 사항을 체크하고, 금주 미팅 일정을 공유하고,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다. 그리고 화면창 우측 하단의 시계를 본다. 9시 17분. 퇴근하고 싶다.


정오가 가까워져 온다는 사실은 의자 바퀴 소리로 알 수 있다. 정적을 유지하던 사무실에 은은한 진동이 느껴지는 것 아닌가. 앞뒤 좌우로 고개를 돌려가며 소리의 진원지를 좇고 있노라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의자 등받이 너머로 들썩거리고 있는 엉덩이들의 조바심이. 용기 있는 누군가가 일어나서 별안간 스트레칭을 한다면 이제는 때가 됐다는 신호다.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망부석처럼 앉아 있던 이들도 어느새 주변 동태를 살핀다. 멀리서는 알아채기 힘든 옅은 미소를 띠고서.

빌딩 전경

우리는 1층 마당에 모였다.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순간이다. “뭐 먹을까요?” 적게는 4명, 많게는 7-8명 되는 파티원 사이에서 이런저런 메뉴가 언급되지만 누구 하나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이는 없다. 수건 돌리듯, 때로는 폭탄을 돌리듯 오고 가는 눈치 속에 선뜻 주인을 만나지 못하는 오늘의 점심 메뉴 결정권. 안전한 옵션이 하나 나오면 그제야 다들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보인다. 단체 점심 식사라는 토론장에서는 ‘먹고 싶다’보다 ‘그거만 빼고’ 같은 주장이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지니까. 크게 반대하는 사람만 없다면 거기로 향하는 게 국룰이다. 


그러다 보면 별로 안 먹고 싶은데도 대세를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아무도 강제하진 않았으나 거기서 “유감스럽게도 저는 지금 김치찌개가 안 땡깁니다만?” 하고 말을 꺼내는 게 쉽지 않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데 상당한 재능을 보이는 내가, 모두가 Yes 할 때 No를 외치는 용자가 될 리 만무하다. 그리고 나는 가끔 그 사실이 피곤했다. ‘국룰’과 ‘디폴트값’에 반하는 ‘소신 발언’을 해야 하는 상황이. 가뜩이나 집 가고 싶은데 유일한 휴식 시간마저 이런 시답잖은 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게. 혼자였다면 이럴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동해서 자리를 잡고 주문까지 마쳤을 거라 생각한 적도 있음을 고백한다.

음식 사진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정반대다. 프리랜서 김정현 씨의 점심식사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 시간도, 장소도, 메뉴도.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 먹어도 되고 귀찮다면 카페에서 커피에 디저트로 가볍게 때워도 된다. 이따금 기분을 내고 싶은 날에는 평소 한 끼 식사 지출의 두 배 가까이 되는 값비싼 식당으로 향할 때도 있다. 특별한 약속이 잡히지 않는 이상 혼자 먹는 경우가 다반사인 만큼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다. 나는 완벽히 자유롭다.


하지만 그때는 좀 서러웠다. 광화문 도렴빌딩 지하에 있는 한 식당에서 ‘1인 손님은 안 받는다’며 입장 거부를 당했을 때 말이다. 웬만하면 안 들여보내 준다는 압구정 클럽 입장을 무리하게 시도한 것도 아니고 나는 그냥 무난한 9,000원짜리 제육볶음을 먹고 싶었을 뿐인데. 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신명나게 제육과 애호박무침을 흡입하던 부장뻘 아저씨들 무리를 부러움 섞인 눈으로 쳐다보던 1인 손님은 별수 없이 바로 옆 가게로 들어가 돼지불백을 주문했다. 구성은 푸짐했으나 어쩐지 성에 차지 않는 식사였다.

음식 사진

자주 생기는 일은 아니다. 있다고 해도 근처 식당으로 대체하면 되니 불편함을 느낄 것도 없다. 오히려 마음에 더 오래가는 파문을 남기는 순간은 북적거리는 직장인들 틈에 용케 자리를 잘 잡고 앉아 밥을 먹을 때다. 정오에 맞춰 우르르 쏟아져 나온 이들이 꿀맛이라며 크게 한 입 삼키는 건 과연 밥과 국물뿐일까? 출근 직후부터 고대하던 휴식 시간을 기똥차게 삼키는 회사원들을 나는 가만히 지켜본다. 행복해 보인다. 한 시간 남짓의 점심시간이라는 제약 때문에 더 소중하겠지. 셔츠와 타이, 재킷을 걸친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만 턱수염을 기르고 후디에 볼캡을 눌러쓴 남자는 사무실 복귀 시간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느릿느릿 멸치볶음을 씹을 뿐이다. 


예전 같았으면 이 묘한 대비에 나는 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자의식 충만하고 관심받기 좋아하는, 지독한 홍대병 소유자가 ’여기서 나 혼자만 다른 것 같은’ 순간을 어떻게 그냥 지나치랴.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고 유연하게 일하는 내 모습에 취해 지 혼자 영화 찍었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요즘은 뭔가 이상하다. 혼자서 꿋꿋이 혼밥을 즐기던 나에게 때때로 찾아오는 헛헛함의 정체는 뭘까? 눈치 볼 필요 없는 점심 식사를 갈망하던 직장인은 프리랜서가 된 이후로 다 함께 식당으로 향하던 옹기종기 런치타임을 그리워한다.

음식 사진2

비단 식사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혼자 일하는 게 만족스럽지만, 동고동락하는 멋진 팀원들과의 으쌰으쌰 영차영차 바이브에 대한 갈증 또한 여전히 마음 한쪽에 남아 있으니까. 조직에 속해 일하는 이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단체 사진을 보면 부러움이 차오를 때도 있다. 인간은 언제나 결핍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거기 있는 게 불과 1년 전의 나를 괴롭게 했다는 기억도 잊은 채. 


망각의 재능을 타고난 김정현 씨는 프리랜서 생활 제대로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자꾸만 조급한 마음으로 뒤를 돌아본다.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 다닐 때보다 잘 해낼 거라는 자기 확신만 있다면 얘기는 달라질 텐데. 어떻게든 현재 방식의 이점을 찾아내 스스로를 다독일 거다. 어차피 불안은 밥 한 숟갈도 못 먹여 준다. 나한테 가장 필요한 건 독립을 감행한 과거의 선택을 믿고 조금만 더 가보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음식 사진

생각만 해도 귀찮은 질문 ‘점심 뭐 먹지.’ 누군가에게는 생각만 해도 설레고 즐거운 질문일 터. 그들 중 상당수는 오전에 충분히 열심히 일한 사람들일 거라 추측해본다. 나도 그러면 된다.

들쭉날쭉한 월수입 그래프와 동종업계 종사자의 승진 소식에서 이제 그만 눈 떼고, 지금 하는 일들이 나를 예상치 못한 곳으로 데려가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더 열심히. 그 마음가짐에 익숙해질수록 점심 식사 만족도는 꾸준한 상향 곡선을 그릴 것이다. 혼자 먹든 열 명이 먹든 그런 건 아무 문제가 안 된다.


김정현

작가 겸 에디터


에세이 「나다운 게 뭔데」를 썼다.

유튜브 채널 '현정김'을 운영한다.

디지털 미디어 <디에디트>와 뮤직 &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BGM>의 객원 에디터로도 활동 중이다.

어떤 분야든 은근슬쩍 내 이야기를 끼워 넣을 때 가장 즐겁다.

필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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