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꼭 해야 할 일이 아니면 쳐내는 것, 그게 Work Smart죠.
Work Smartㅣ주말토리 대표 황엄지
2025-02-10
‘인간 박세진’이 경험하고 느낀 감성을
공간과 음식에 담습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서 ‘일식 타짜’로 이름을 알린 박세진 셰프. 한때 야구선수를 꿈꿨지만, 생각하지 못한 계기로 요리사의 길을 걷기 시작해 올해로 24년 차 셰프가 됐다. 그가 만드는 음식과 공간은 <고독한 미식가>, <심야식당>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맛과 분위기로 유명하다. 극도로 치열한 요식업계에서 그는 어떻게 남다른 자신만의 한끝을 만들 수 있었을까? F&B 창업을 고민하거나 준비 중인 사람에게 그가 꼭 건네고 싶었던 한 마디는 무엇이었을까?
Q. 대표님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심야식당 세이지와 스낵바 세이지, 야키니쿠 세이지를 운영하는 박세진이라고 합니다. 어느덧 이 분야에서 일한 지도 20년이 넘었네요.
Q. <흑백요리사>는 어떤 계기로 출연하게 되셨나요? 비하인드 스토리도 궁금해요.
일본에서 유학할 때부터 알던 스타 셰프 선배님이 추천해 주셔서 지원했어요. 처음엔 백종원 선생님이 심사를 맡고 셰프들이 자기 메뉴를 선보이는 ‘무명 요리사’ 컨셉으로 안내를 받았어요.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했죠. 메뉴도 예전부터 잘 팔리던 것들로 준비했고요. 막상 가보니까 제가 생각한 거하고 너무 달랐어요. 완전 경연 프로그램이었던 거죠. 당황스러웠지만 최대한 잘 해내고 싶어서, 나름 자신있던 피망 츠쿠네(*일본식 고기완자)를 선보였어요. 그 메뉴는 백종원 선생님이 좋아하셨는데, 고기를 동글게 뭉쳐서 튀긴 멘치카츠는 다소 평범하다고 평가해 주셨어요. 그래서인지 1라운드에서 탈락했습니다(웃음).
Q. 이전에도 비슷한 프로그램에 출연하신 적이 있었나요?
경연 프로그램은 처음이었지만, 긴장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EBS <최고의 요리비결>이나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도 있으니까요. 다만 아쉬운 건 있죠. 저 진짜 잘했거든요(웃음). <흑백요리사>에 맞는 메뉴를 준비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커요. 제 주력 메뉴는 10분~15분이면 완성되는데, <흑백요리사>에서는 1시간 반이나 주어졌거든요.
일찍 떨어진 건 아쉽지만, 저에게는 출연 자체가 큰 도움이 됐어요. 인지도가 올라간 것도 있지만, 제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을 받았거든요. 오랫동안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공간을 저의 컨셉으로 지켜왔는데 작년부터 프랜차이즈 이자카야들이 늘어나면서 비슷하게 느낌만 낸 곳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나도 이제 퇴색된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흑백요리사> 이후 많은 분이 제 정성을 알아주시는 것 같아 정말 좋았습니다.
Q. 대학교 때까지 야구선수로 활동하셨는데요. 요리에 입문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초등학생 때부터 야구를 했어요. 나름 체육 특기생이었죠. 하지만 쭉 2군 선수로만 활동했고, 대학생이 됐을 때는 실력이 안 돼서 1학년 때 방출당했어요. 프로 선수라는 꿈만 보고 달려왔는데, 갈 길이 사라진 거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자연스럽게 요리가 떠올랐어요. 할아버지는 미군 부대 요리사셨고, 할머니는 궁중요리사셨거든요. 어머니도 30년 넘게 외식업을 하셨고요. 한식집, 일식집, 카페까지 하신 분이에요. 그래서 요리 말고는 다른 일을 할 생각이 안 들었죠.
Q. 2001년에는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인 오사카 츠지로 유학을 떠나셨어요. 일본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일본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어떤 건지도 궁금해요.
고등학생 때 어머니 일을 도와드린 적이 있어요. 그때 경험이 생각나서, 막연하게 일식을 공부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군 생활을 마치고 바로 일본으로 떠났어요. 준비한 거라고는 군대에서 일본어를 공부했다는 것밖에 없었어요.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일본에 온 직후에는 재일교포 가게에서 1년 정도 일하고, 그다음에 츠지 조리과를 다니며 공부했어요. 졸업 후에는 고급 요리점인 토카(TOKA)에서 3년간 일했죠.
거기서 배운 건 목숨 걸고 일하는 태도였어요. 저를 가르친 분들은 정말로 음식에 자기 인생을 건 분들이었어요. 개인 시간이나 여유는 생각도 안 할 정도로요. 솔직히 저는 ‘음식만 맛있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자기의 모든 걸 쏟아부어야, 손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식이 만들어진다는 걸 정말 혹독하게 배웠어요. 그때 교훈이 지금까지도 저에게 도움이 되고요. 지금도 저는 눈 뜨면 요리 생각밖에 안 해요. 깨어있는 시간의 95%는 요리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Q. 유학 후 청담 레스토랑에서 일하시고, 홍대 일본요리점과 하와이 요리점 총괄 셰프를 맡으시기도 했죠. 이때의 경험은 셰프님께 어떻게 도움이 되고 있나요?
일본에서 배운 일하는 방식, 마음가짐을 우리나라 시장에 맞게 적용하는 법을 배웠어요. 저의 주 고객은 한국 분들이지 외국인들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 하던 대로만 하면, 우리나라 손님들이 저를 찾아올 이유가 없죠. 그래서 한국에서 일할 때는 일본 음식을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변주하거나, 양을 푸짐하게 주는 식으로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포인트를 넣으려 노력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메뉴 개발 관련해서 시행착오도 많이 했어요. 수많은 종류의 일식 요리들을 공부하고, 우리나라 정서와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해야 했으니까요. 보이는 것도 신경 써야 했죠. 전에 있던 가게 사장님이 사진과 출신이어서, 시각적인 게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하셨거든요. 덕분에 지금도 메뉴를 만들 때 사진을 찍으면 어떻게 보일지, 고객들은 어떻게 느낄지까지 고려해요. 이렇게 음식을 다방면으로 바라보고 기획하는 게 지금도 크게 도움이 되죠.
Q. 현재는 셰프님만의 공간을 운영하고 계세요. 창업이라는 새로운 도전은 어땠나요?
처음에는 창업할 생각이 없었어요. 홍대에서 총괄 셰프로 7년 동안 일하면서 좋은 팀원들을 만났고, 새로운 시도도 계속할 수 있었거든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여기서 개발하는 게 정말 내 메뉴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제가 열심히 기획하고 연구해도, 그 결과물은 매장 음식이지 제 건 아니더라고요. 그런 와중에 결혼도 하면서, 이젠 정말로 독립해서 나를 한 단계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2016년 심야식당 세이지를 시작했는데, 오픈하자마자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로 잘 됐어요. ‘사람 와 봐야 얼마나 오겠어’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제가 안일했던 거죠. 좀 더 체계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정리해야 했는데 그런 준비가 안 돼서 초반에 힘들었어요. 그래도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기분 정말 좋았습니다.
Q. 셰프님이 직접 리더가 되는 식당을 시작할 때 걱정되지는 않으셨나요? F&B는 트렌드가 특히 빠르게 변하는데, 어떻게 대응하셨는지도 궁금해요.
사실 심야식당 세이지의 컨셉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당시에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이 관심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걸 참고하고 제가 일본에서 실제로 보고 느낀 걸 더한 거죠. 테이블과 의자부터 조명까지, 최대한 일본에서 쓰는 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맞췄어요. 메뉴 이름도 ‘고독한 피망꾸쯔네 함박’처럼 기억하기 쉽게 지었죠. 당시에 그 정도로 디테일하게 한국에 심야식당을 구현한 건 제가 처음일 거예요. 제 경험을 구석구석 담으려 노력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그러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처음으로 장사를 걱정하게 됐어요. 그전까지는 항상 사람들이 몰렸거든요. 그러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게 되고, 집에서 술을 마시고 파티를 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거죠. 그런 와중에 심야식당 세이지와 비슷한 소규모 이자카야들도 많이 생겨났고요. 고민하던 와중에 우노 다카시의 <장사의 신>이라는 책에서 단서를 찾았습니다. “작은 가게는 에어컨 냉풍이 아니라, 어머니가 흔들어주는 부채의 바람처럼 다가가야 한다”는 건데요. 고객 한 분 한 분을 진정성 있게 대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고, 유일한 방법이라는 뜻으로 다가왔어요. 그래서 더욱 접객에 최선을 다했고, 지금도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셰프님의 대표 공간인 심야식당 세이지는 어떤 컨셉의 공간인가요? 시그니처 메뉴도 궁금해요.
드라마 <심야식당>, <고독한 미식가> 속에 나오는 자연스럽게 손때 묻은 공간을 지향해요. 제가 일본에서 경험한 걸 최대한 그대로 적용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인테리어도 전부 직접 했어요. 의자나 테이블, 조명 하나하나 꼼꼼하게 골랐고요. 그렇게 해야 손님을 대하는 마음이 공간에 제대로 스며든다고 생각했어요. 고객들도 그걸 알아보고요.
대표 메뉴는 <심야식당>에 나오는 닭고기 가라아게예요. 치킨 파우더가 아니라 계란과 전분으로 튀겨서 식감이 더 좋죠. <고독한 미식가>에 등장한 피망 츠쿠네도 꾸준히 잘 팔리고요. 제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메뉴들도 반응이 좋아요. 가지 안에 고기를 넣어서 튀긴 요리는 일본 유학할 때 먹어본 기억을 살렸어요. 탄탄미소 모짜나베는 어머니가 음식 하시면서 만든 레시피를 배워서 응용했고요.
Q. 스낵바 세이지, 야키니쿠 세이지 등 다른 공간도 꾸준히 확장 중이신데요. 새로운 공간을 만들 때 지키는 원칙은 무엇인가요?
무조건 새롭거나 유행하는 걸 따라가지 말자. 내가 실제로 경험하고 느낀 걸 표현하는 가게를 만들자. 새로운 식당을 열 때마다 되새기는 마음가짐이에요. 손님한테 ‘이런 세계도 있어요’라고 말을 거는 매장을 만들고 싶어요. 그렇게 해야 사람들이 ‘여기는 찐이구나’라고 느끼더라고요. 예전에는 그래도 대중적인 걸 지향해야 하지 않나 싶었는데, 제 이름을 걸고 장사를 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제가 곧 50살이 돼서 그런 것도 있고요(웃음). 이젠 남들은 따라 할 수 없는, 정말 저여서 가능한 걸 해 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대중적인 것보다 뾰족한 취향의 사람들이 반응하는 특별한 가게를 만들려고 해요.
Q. 지금은 모두가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많은데요. 셰프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의 경험과 생각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도 필요하죠. 제 존재와 매력을 알려야 하니까요. 하지만 핵심은 세상에 하나뿐인 박세진이라는 인간의 삶이에요. 제 삶에서 경험하고 느낀 걸 음식과 공간에 담으니까, 사람들도 매력을 느끼는 거겠죠. 거기에 20년 넘는 경력이 더해져서 저에 대한 신뢰가 생기는 거고요. 나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내 경험과 느낌을 보여줘야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브랜드가 된다고 봅니다.
요즘은 메뉴 개발하는 게 예전보다 훨씬 힘들어요. 새롭고 다양한 음식들이 하루에도 몇 개씩 등장하니까요. 그래서 더더욱 제 경험에서 영감을 얻으려 노력해요. 제가 어릴 때 양념치킨을 좋아했으니까, 가라아게를 두반장으로 양념하는 식으로요. 이런 식으로 나만 접목하거나 응용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내야죠. 그렇게 해야 트렌드에 휘둘리지 않는, 고유한 매력의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젠 아무리 잘 따라 해도 사람들이 다 알거든요.
Q. 끊임없이 발전하려 노력하는 셰프님만의 ‘Work Smart’는 무엇인가요?
앞에서 말한 책 <장사의 신>에 “자기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라”는 대목이 있는데요. 이것 자체가 Work Smart라고 생각해요. 저는 오랫동안 요리를 하고 손님을 대접했으니 그 일을 고도화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세무나 콘텐츠는 그 분야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거죠. 그래야 제 본업을 더 잘 해낼 수 있으니까요.
Q. 앞으로 셰프님은 어떤 도전을 해 보고 싶으신가요?
작은 건물을 매입해서 복합 문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업종 상관없이 자기만의 브랜드가 있는 사람들,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모든 걸 쏟아붓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요. 일식 이외 다른 식당이나 카페, 편집숍 같은 게 들어올 수 있겠죠. 그렇게 선명한 개성들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열정적인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즐기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Q. F&B 창업을 준비 중이거나, 고민 중인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요식업계 경험이나 기술이 없다면, 프랜차이즈부터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잘 찾아보면 괜찮은 프랜차이즈도 분명히 있거든요. 처음부터 아무 준비 없이 창업부터 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고 봅니다. 프랜차이즈에서 일하는 노하우를 쌓고, 그다음에 자기 공간을 시작해도 늦지 않아요. 부지런히 발품 팔면서 전 세계 다양한 식당들, 음식들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해요. 그래야 음식뿐만 아니라 고객을 대하는 문화, 기억에 남는 인테리어도 배울 수 있으니까요. 저는 이제 순수하게 맛으로만 유지되는 매장은 10%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접객과 공간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글 최진수 에디터
- 사진 라운드앤바운스
<Work Smart>란?
누구나 일을 하며 한 번쯤 곤란한 순간을 맞이합니다. 전혀 모르는 분야의 일을 갑자기 해야 하거나, 내가 못 하는 일인데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그런 순간들이 필연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럴 때면 우리 모두 한 번쯤, ‘믿고 맡길 수 있는 전문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크몽은 그럴 때 도움이 되기 위해 존재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실력과 경력이 검증된 전문가들과 빠르게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크몽의 ‘Work Smart’입니다. 앞으로도 <Work Smart>에서는 이런 사람들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인터뷰 제안: rachel.bae@kmong,com로 메일 보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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