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연말결산

프리랜서로 사는 법ㅣ2024년 회고, 근데 이제 절망 편과 희망 편을 곁들인

202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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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로 사는 법」에서는 김정현 프리랜서 에디터가 들려주는 프리랜서만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자유롭지만 불안한 밥벌이에 대한 고충을 통해 프리랜서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프리랜서의 연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끝을 향해 달려가는 2024년. 1년을 돌아보며 느낀 프리랜서의 소회를 김정현 에디터가 솔직한 에세이로 담아냈는데요, 한 해 동안 치열하게 일하면서 느낀 프리랜서들의 절망,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희망을 김정현 에디터만의 이야기로 들어보세요.

프리랜서로 힘차게 달린 올 한 해, 나를 가장 웃고 울린 일들은 무엇일까.


뭐 했다고 연말이냐. 요즘 제일 많이 하는 말이다.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르지. 두 번째로 많이 하는 말이다. 정신 차려 보니 한 해가 저물었더라- 하는 경험은 오늘내일 일이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프리랜서 세계에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체감하는 속도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출퇴근도 안 하는 주제에 게으르게 살아서일까?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는 새로운 일들을 정신없이 처리하며 살아서일까? 어느 쪽이든 2024년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나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난 1년을 돌아보는 시점에 와 있다.


나의 2024년을 돌아보며 반복적으로 되새기는 것은 ‘일희일비하지 않기’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많았던 시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볼 때 알게 된다.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고.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 어떤 의미를 찾아내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희망과 절망은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반복될 테다. 그건 어느 한쪽으로 인해 무너질 이유도 자만할 필요도 없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프리랜서로 힘차게 달린 올 한 해, 나를 가장 웃고 울린 일들은 무엇일까. 아래 두 가지를 추려 적었다. 역시 절망 편과 희망 편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세트 메뉴다.


눈이 쌓인 의자 이미지

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 절망 편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도 기분 나쁜 사람이 있을까? ‘그동안’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과거형의 감사 인사를 받은 나만 빼고. 프리랜서에게 연말과 연초는 생각이 폭포수를 이루고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시기다. 정든 클라이언트와 작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을 붙잡(지 못하)는 절박한 목소리가 가슴 저 밑에서 울린다. 열심히 살았던 한 해를 보내는 것도 울적한데,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사실만 해도 심란한데, 제때 일감과 수당을 하사하시던 귀한 분들이 떠나가다니.


대개 나는 짧으면 6개월, 길게는 1년 단위로 계약을 맺고 일한다. 일회성 외주 업무가 빈번하게 오가는 입장에서 1년이면 장기 계약에 속하는 편이다. 월 단위로 이뤄지는 고정적인 납품과 지급의 사이클은 불확실성 투성이인 프리랜서의 일상에 안정을 부여한다. 그 안정감은 내 일, 내 커리어, 내 경쟁력이라는 ‘향후’를 도모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문제는 유통기한. 연말이면 하나둘 비보가 날아든다. 많은 기업이 기존의 사업을 정리하거나 개편하는 시점인 것이다. 계약 연장의 꿈에 도달하기에는 장벽이 많아도 너무 많고, 장벽을 뛰어넘기엔 점프력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나는 웃으며 (동시에 눈물을 닦으며) 답장을 적는다. “신경 많이 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더 좋은 기회로 뵙길 바라요.”


새벽 풍경
  • 희망 편 


“처음 인사드립니다.” 내향인에게도 낯선 사람의 인사가 반가울 때가 있다. 나를 좋게 봤다며 일을 제안하는 경우가 특히 그렇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 했던가. ‘당신과 더 이상 함께 갈 수 없다’는 비보가 끝나기도 전에 들려오는 ‘당신에게 이 중요한 일을 맡기고 싶다’는 낭보. 내년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으니 검토 부탁드려요. 한 번 만나 뵙고 자세히 얘기 나눠도 좋겠습니다.


끊길 듯 끊기지 않는 업무 청탁을 살피다 보면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어디선가 누군가는 보고 있구나. 돈 얼마 주지도 않으면서 더럽게 귀찮게 한다며 욕했던 작업도, 재미는 없지만 돈 주니까 한다며 영혼 빼놓고 마감하던 작업도. 프리랜서로 일하며 확실히 깨달은 게 있다면 기회는 정말이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쉽게 주어지지 않은 만큼 그 생명력과 파급력은 생각 이상으로 크고 강하다는 것이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먼저 찾아간다. 찾아온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 사람은 기회 아닌 것조차 기회로 만든다. 운 좋게도 2025년의 기회를 잡은 나는 웃으며 (동시에 눈물을 닦으며) 답장을 적는다. “반갑습니다. 저를 좋게 봐주시고 귀한 제안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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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자와 동료 사이


  • 절망 편


“2024년은 커리어를 새롭게 확장할 수 있는 해였습니다. 믿고 맡겨 주신 모든 파트너사 분들 감사합니다.^^” 건치 미소를 드러내는 그의 얼굴 옆에 덕지덕지 태그된 각종 브랜드 계정. 언젠가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회사 이름을 거기에서 발견했을 때의 마음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인스타그램 월드에서 질투와 열등감 따위를 느낀 건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다. 화려한 연예인을, 쉽게 스타가 된 것처럼 보이는 인플루언서를, 허구한 날 여행 가고 맛집 탐방하는 지인을 볼 때마다 비아냥 섞인 한숨을 내뱉으니까. 


그러나 연말에 업계 종사자의 피드를 살펴보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올 한 해 나보다 많은 일을 해낸, 나보다 규모가 큰 고객사를 확보한, 나보다 한 뼘 높은 인지도를 쌓은 그/그녀는 나와 같은 밥그릇을 놓고 다퉈야 하는 경쟁자다. 기세등등 승승장구 파죽지세 경쟁자의 연말 회고를 읽을 때마다 쓴웃음을 짓게 된다. 나는 뭐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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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 편


프리랜서는 각자도생의 세계에 산다. 혼자라서 자유롭다. 자유로우나 외롭다. 무능력한 부장님을 같이 흉봐줄 옆 부서 동기도, 난처한 일이 생길 때마다 묵묵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줄 팀장님도 없다. 무례한 클라이언트나 작년보다 한참 오른 건보료 문제는 존재하는데! 각자의 자리에 버티고 선 동료들이 귀한 건 그래서다. 어제의 경쟁자는 오늘의 전우.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는 사이다. 질투와 경계심 따위, 동병상련의 심정을 당해내지 못한다. 


최근 몇몇 프리랜서 동료들에게 만남을 제안했다. 커피 한 잔 마시며 수다나 떨자고. 가벼운 근황으로 포문을 연 대화는 때로는 불행 배틀이 되었다가 때로는 자랑 배틀로 흘렀다가 결국에는 공감 대잔치로 끝이 났다. 분야가 다르고 포지션이 달라도 프리랜서의 기쁨과 슬픔은 통한다. 혼자는 혼자가 알아보는 법이다. 당신의 고군분투를 기억하겠다는 응원이,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얼마든지 돕겠다는 격려와 지지가, 알아두면 쓸데 많은 유용한 정보와 꿀팁이 우리의 연말을 채운다. 소속 없이 느끼는 소속감이라… 이 계절이 춥지만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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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에게는 종무식이 있다. 한 해의 업무를 결산하고 함께 고생한 이들을 격려하는 공식적인 자리를 갖는다. 맛있는 음식과 술을 곁들인 회식을 하기도, 모여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대신 쿨하게 단체 연차를 쓰기도 할 테지. 혼자인 나는 그런 거 없다. 업무는 끝나지 않았다. 올해 내가 얼마나 야무지게 활동했는지를 정리해서 공유하고, 신년에 새로운 사업을 계획하고 있을 잠재적 고객님들께 눈도장을 찍어야 한다.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일은 일 년 내내 현재진행형이다. 


프리랜서의 연말은 왜 이렇게 애처롭냐고? 그러나 애처로움은 뿌듯함을 이기지 못한다고 답하고 싶다. 잘해서 느끼는 뿌듯함이 아니다.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안다는 사실에서 오는 기특함에 가깝다. 나는 나의 인사팀이자 경영지원팀이자 기획조정실. 모든 책임을 홀로 떠안는 만큼 내게는 나를 분석하고 평가할 데이터가 넘쳐난다. 그 데이터를 꼼꼼히 살피다 보면 2024년에 걸어온 길이 보인다. 주어지는 모든 일이 생존을 위한 과제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동시에 성장의 발판이자 커리어 지도를 이루는 좌표였음을 2024 레이스 후반부에 와서야 깨닫는다. 자의든 타의든 회고하는 과정을 갖는다는 점에서 나는 이 시기가 만족스럽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나를 찾아올 이 절망과 희망의 파도를 상기하는, 어쩌면 일 년 중에 가장 중요한 시간이. 멈춰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웬만해서는 고꾸라지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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