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책 표지는 국가별로 뭐가 다를까?
2024-11-05
고노스 유키코의 <읽기로서의 번역>에서는 번역은 ‘자신의 언어로 아웃풋’ 하는 행위이자 ‘온몸을 던진 독서’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책을 감싸고 있는 표지는 어떨까요? 표지 디자인은 책의 내용을 체득해 디자이너의 미감으로 승화시키는, 자신의 시각으로 ‘아웃풋’ 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독자가 접하는 책의 ‘첫인상’이기도 하죠.
하지만 책 표지는 디자이너의 예술적 기량을 한껏 뽐내는 곳은 아닙니다. 저자, 편집자, 최종 결정자 등 많은 이들의 이해충돌 산물입니다. 그렇기에 디자이너는 이 요소들을 생각해 디자인 시안을 제작합니다. 오늘 아티클에서는 크몽 디자인 카테고리 Lamaa 전문가가 책의 첫인상을 좌우하고 최종 구매에까지 영향을 주는 책의 표지 디자인에 관해 알려드립니다.
목차
- 한강 작가의 국내, 해외 표지 디자인 비교, 국가별 특징
- 북디자인 트렌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은?
- 편집 디자인 단계별 과정, 의뢰인 체크리스트
- 디자이너에게 디자인 의뢰하는 방법
한강 작가의 대표 도서로 보는 국가별 표지 디자인 특징
최근 국내의 가장 뜨거운 이슈였던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아시아 첫 여성 수상자이자, 대한민국 작가로는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기에 이번 수상은 모두에게 더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출판사들은 전례 없는 매출 증가율을 보이고 자사 제품에 작가를 연결해 홍보하고 있습니다. 책은 빠르게 품절되고 있구요. 이 열기는 한동안 지속될 듯 보입니다. 한강은 노벨상 이전에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을 수상해 이미 해외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았어요. 여러 나라에서 많이 번역되어 출간됐습니다.
<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한강만의 언어로 풀어낸 장편 소설입니다.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동호’와 주변 인물들의 아픔을 다루었습니다. 작가는 집필하면서 압도적인 고통을 느끼며 매일 울었다고 합니다. 여전히 생존자들에겐 끝나지 않은 큰 상처로 남아있는 사건을 작가는 무시할 수 없었죠.
위 이미지는 번역가로서 맨부커상을 공동 수상한 데보라 스미스가 번역한 영국의 하드커버, 페이퍼백 그리고 미국판 세 종류의 책입니다. 영문판은 제목을 <인간의 행위 Human Acts>라고 번역했습니다. 6장으로 구성된 소설의 1장에서 동호가 천변길을 걷던 도중 무차별적으로 폭행당하는 남자를 보고 ‘인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았다’라는 대목에 착안해 지었다고 합니다.
그랜타북스 Granta Books 출판사의 하드커버는 푸른 박을 입힌 작가가 직접 쓴 손 글씨를 배경으로 5.18 광주 학살의 잔인함을 직관적으로 드러낸 총알을 배치했습니다. 한강 작가는 페이퍼백 표지 디자인을 위해 그랜타 출판사에 직접 방문해 편집자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흰>
작가가 명명한 ‘흰’의 목록(쌀밥, 수의, 흰나비, 각설탕, 흰 뼈 등..)을 바탕으로 총 65개의 이야기가 나오는 소설집입니다. 산문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시적인 문장이 주를 이룹니다. 작가가 ‘글 전체가 작가의 말’이라 부른 만큼 그녀의 목소리와 삶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요.
<모든 하얀 것들의 すべての、白いものたちの>라는 제목을 가진 일본판 ‘흰’의 표지입니다. 왼쪽 상단의 얇은 고딕체 한글과 흑백의 사진의 조화가 서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흑백 사진은 ‘흰’과 짝을 이루는 한강의 퍼포먼스 <배내옷, 2016-2018>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배내옷>은 한강이 태어나기 이전 조산아로 태어나 두 시간 만에 사망한 언니(아기)의 수의가 된 옷을 상징합니다. 이 책의 묘미는 내지에 있는데요, ‘흰색에도 다양한 흰색이 있다’ 라는 작품 속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5종의 질감, 색상이 다른 종이를 사용했다고 해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독일의 북아트재단과 라이프치히 도서전은 매년 전 세계에서 보내오는 책들을 심사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을 선정합니다. 수상작은 ‘황금 활자상’ 그리고 금상, 은상, 동상, 명예상까지 총 14개로 나뉘어요. 황금 활자상을 받은 책은 독일 라이프치히 책 박물관에 영구히 소장되는 명예를 누립니다. 개인이 아닌 국가 단위로 심사하기 때문에 국가별로 먼저 대표를 선정해야 합니다. 한국은 예선이라 할 수 있는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최하고 서울국제도서전이 주관하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서 뽑히면 자동으로 공모에 출품됩니다.
디자이너 자나 소피가 Jana Sofie Liebe 소프박스 Soapbox 출판사와 구상한 책 <Walking as Research Practice>은 약속을 기다리는 동안, 걷는 동안 또는 서 있는 동안에 읽기에 좋은 책입니다.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판형(19.8 × 12.2 cm)에 150페이지 분량이며 촉감이 좋은 종이와 거친 모서리의 조화가 영감을 준다는 평입니다. 오른쪽 페이지에는 본문이 있고 왼쪽은 비어 있거나 각주, 출처, 도판을 배치했습니다. ‘콜드글루바인딩 cold glue binding’(제본 시 풀이 마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나 완전히 폈을 때 구겨지거나 부러지지 않는다) 제본 기법을 활용해 접은 상태로 오랫동안 둘 수 있다고 합니다.
2024 도서 트렌드
독일 북아트재단의 올해 수상작들은 책이 감각적으로 더 깊게 다가가도록 하는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촉각적 경험을 주는 소재를 사용해 주제를 강화하고, 지속 가능성을 핵심 디자인 원칙으로 삼아 생태학적 메시지와 예술적 요소의 조화를 줬습니다. 그리고 독창적 레이아웃과 비전통적인 제본방식으로 실험적 접근을 꾀하기도 합니다.
이쯤되면 궁금한 점이 있으실 겁니다. “혹시 한국도 있을까요..?” 네, 있습니다! 그것도 황금 활자상을 수상했어요. 그래픽 디자인 듀오 ‘신신’이 디자인한 책 <푀유 FEUILLES>가 그 주인공입니다. 프랑스어로 ‘잎사귀’를 뜻하는 푀유는 엄유정 작가의 그림 112점이 수록된 화집입니다. 디자이너는 그림의 형태와 기법, 그리고 재료의 특성을 생각해 내지를 구성했어요. 드로잉 연작은 전자제품 설명서에 쓰이는 얇게 비치는 종이를 이용해 비침 효과를, 건조한 과슈에는 모조지를 사용해 스밈 효과를 줬다고 합니다. 장을 넘길 때마다 종이의 두께가 달라지는 디테일을 통해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으로도 책을 경험할 수 있어요. 절제된 디자인으로 책과 디자인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 기능성을 더 돋보이게 한다는 평입니다.
2023년에는 김형진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워크룸프레스’ 출판사의 ‘사무엘 베케트 선집’이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한국 디자인의 저력을 보여주었어요.
이처럼 디자이너는 단순 미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부분 예컨대, 종이의 종류, 제본 방식, 판형 등의 요소를 고려해야 합니다.
디자인 외주 어떻게 할까? 책 출판 과정
- 기획출판: 제안 - 출판사와 의견 조율 – 계약서 작성 – 원고 전달 - 편집자와 원고 편집 – 디자인 시안 고르기 – 인쇄 및 유통 - 홍보
출판사와 같이 할 경우 인쇄, 디자인, 제본, 유통 등은 출판사에 맡길 수 있어서 저자는 원고에만 신경 쓸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출판사의 유통망을 통해 독자에게 더 쉽게 접근 가능합니다. 단점은 수익 구조로 인해 수익의 일부만을 받을 수 있으며 (어떤 계약 방식을 채택하는가에 따라 수익 배분은 매우 달라집니다)저자의 자율성은 떨어집니다.
- 독립 출판(자비출판): 위 과정을 스스로 해결하거나 일부 외주에 맡긴다.
독립 출판을 선택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출판사가 원고 제안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쉽지 않아서이기도 합니다. 출판사는 시장성과 수익성을 고려해 잘 팔릴 책을 골라야만 하므로 비주류, 실험적인 책은 채택하기 힘듭니다. 독립 출판을 할 경우, 저자의 독립성과 자유도가 훨씬 높으며 저작권과 수익도 온전히 가져갈 수 있습니다.
자비든 기획출판이든 책을 내기에 앞서 중요한 것은 ‘기획서 작성’입니다. 기획서가 잘 돼 있으면 출판사에 제안할 때 혹은 외주로 일을 맡길 때 훨씬 일을 효율적으로 빠르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예시입니다.
디자이너와 상담 전에 체크해두면 좋을 것
- 제본방식
- 판형
- 표지 제목, 저자 정보, 로고
- 바코드, isbn
- 날개 여부
- 간기면(판권면)
- 분량
디자인은 책을 출판하는 수많은 과정 중 일부입니다. 디자이너는 편집자 혹은 저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해 최대한 책의 내용을 잘 담으면서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디자인을 위해 고심합니다. 수많은 수정과 수정 그리고 수정을 통해서요. 자신이 의도한 바와 가까운 결과물을 내고 싶다면 의뢰 시, 디자이너에게 적극적으로 컨셉과 방향을 전달해 주세요. (예. 레퍼런스 제시, ‘~한 분위기로 ~연령대의 사람들이 읽을만한 ~전달 목적인 디자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