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로 사는 법ㅣ게으르고 자유로운 여름 휴가를 위하여
프리랜서 Life
2024-08-16
「프리랜서로 사는 법」에서는 김정현 프리랜서 에디터가 들려주는 프리랜서만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자유롭지만 불안한 밥벌이에 대한 고충을 통해 프리랜서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더운 여름이면 쉽게 찾아오는 무기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외부로부터의 강제성이 없는 프리랜서는 무기력마저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데요, 연이은 폭염에 몸과 마음이 지치는 정체기가 찾아올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정현 에디터의 에세이를 통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무기력이라는 고질병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봅니다.
“저 오늘 일 못 합니다. 인간적으로 이건 이해해 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날이 이렇게 더운데. 방 안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내가 통보하고 내가 인정한 오늘의 파업은 그렇게 수월하게 흘러갔다. 에어컨을 트는 직원 겸 사장. 침대로 다이빙을 한 후, 유튜브에 접속했다. 비로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은 사람을 가라앉게 만든다. 아니, 매사에 짜증과 분노를 가져다주니 솟아오르게 만든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까? 어느 쪽이든 감정은 과잉의 상태에 이르고 그만큼 의지는 추락한다. 뜨겁게 내리쬐는 오후 볕과 한증막을 연상시키는 높은 습도는 여름날 최고의 방해꾼이다. 일의 진도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대자연의 공격 앞에 나는 속절없이 방전되고 만다. 피할 데라고는 에어컨 밑과 침대 위 스마트폰,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요아정 뿐. 거기 숨는다고 해야 할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사실 더위는 핑계다. 더위 말고도 이 게으른 프리랜서의 의욕을 꺾어버리는 것들은 차고 넘치니까. 크게 달라지는 내용 없이 고만고만한 일들을 해치운다고 느껴질 때가 그렇다. 정체기라고 불러도 권태기라고 불러도 무방할 테다. 매달 비슷한 주제와 비슷한 형식에 비슷한 수고를 들여 비슷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뒤에 남는 마음을 보람이나 뿌듯함이라 부르기에는 아쉽다. ‘이렇게 또 하나 넘겼다’라는 뜨뜻미지근한 절반의 개운함만이 주변을 맴돈다. 이 매너리즘 가득한 과정 가운데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집요한 자료 준비, 손발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업무 분담과 최상의 시너지가 만들어낸 발전된 결과물 따위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나의 잠재력을 확인한 것 같다거나 이번 일로 인해 또 한 뼘 성장한 것 같다는 쾌감 같은 건 느껴본 지 오래.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월말 즈음 통장에 찍히는 입금 내역 뿐이다.
문제는 입금 내역의 사이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바쁘게 산 것 같은데 금액은 왜 이리 앙증맞은가. 지난달보다 일을 두어 개 더 받아도, 덕분에 짧은 휴가를 날리고 궁금했던 전시를 건너뛰어도, 내 잔고는 시몬스도 아닌 주제에 흔들림 없이 편안하게 그래프를 유지한다. 굵직한 프로젝트를 마친 기념으로 나를 위한 선물을 하나 했다는 지인의 포스팅을 볼 때마다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진짜 ‘현타’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바쁘게 산 것 같은” 느낌이 자기 자신에게만 관대한 사람의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을 때 온다. 냉정하게 따져보자. 정현 씨는 일주일에 몇 시간이나 일하십니까? 곧바로 대답할 수 없는 건 가이드라인을 정해놓고 일하지 않는 안일한 패턴 때문이요, 굳이 따져가며 계산해 봐도 주 40시간에 턱없이 못 미칠 거라는 민망함 때문이다. ‘남는 시간에 공부를 하거나 여타 자기계발에 힘쓰고 있지 않습니까’하는 선의의 질문 앞에서도 작아지는 건 마찬가지. 이조차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거니와 그럼에도 남들 받는 것만큼 돈을 받으며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가 꿀벌도 아니면서 어떻게든 꿀을 빨면서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한심한 인간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무기력에 빠진다.
얼마 전 광화문에서 점심을 먹었다. 의뢰받은 오전 취재 업무를 마치고 나오니 시계는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배는 고픈데 어딜 가도 사람은 많고 빈자리는 없었다. 등 가운데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하며 슬슬 짜증이 몰려왔다. ‘에이, 그냥 다른 동네로 넘어가?’ 궁금했던 버거집에서 야무지게 치즈버거 하나 때리고 내친김에 새로 생겼다는 카페도 가보는 거다. 근처에 위치한 매력적인 편집숍이나 갤러리도 지도에 저장해 놨으니 코스로 묶어 돌아봐도 좋겠지. 그럼 남은 하루는 예기치 않은 휴식으로 채워질 테고 오후에 처리하려 했던 업무는 내일로 미뤄질 터. 이미 전날 밤에도 즉흥 파업의 맛을 제대로 본 나는 고민에 빠졌다.
유혹에 흔들리던 나를 붙든 건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시야에 들어오는 사원증의 행렬이었다. 사거리를 가득 메운 이들의 9할이 직장인이었던 것이다. 한 시간의 꿀 같은 식사 시간을 만끽하러 나온 사람들의 얼굴에는 전쟁 같은 오전 일과로 인한 피로와 잠시나마 허락된 휴식이 주는 기쁨이 반씩 새겨져 있었다.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이들 틈에 있자니 신분도 복장도 다른 나 혼자만 겉도는 느낌이 들었는데, 스쳐 가는 여러 감정 끝에 남은 건 불안이었다. 다들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이 정도 열심히 살지 않는 나는, 언제 뒤처질지 모른다는.
당장의 기분에 휩쓸리고 마는 오늘 같은 순간이 쌓이고 또 쌓이면 버거집도 짧은 휴식도 쉽게 못 누리게 되는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건 매일같이 지옥철에 몸을 실으며 상사의 쓴소리와 실적의 압박에 시달리는 이들과 시공간에 제한 없이 자유롭게 일하되 갖은 책임을 혼자서 다 짊어져야 하는 나 모두 마찬가지다. 그들과 나의 다른 점이라면… 내게는 예정된 진급도 상향 조정될 연봉도 없다는 거. 대신 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고 하지 않는 만큼 도태되는 적나라한 야생의 환경만 있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으나 나는 금세 두려워졌다. 정신을 차렸을 땐 바로 앞 식당에 얌전히 줄을 서 있는 나를 발견했고, 빠르게 밥을 먹은 뒤에는 건너편 프랜차이즈 카페로 들어가 콘센트가 구비된 좌석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의욕 없는 상태야말로 나라는 사람의 기본값일지도 모르겠다. 가끔가다 찾아오는 예외 상황이 아니기에 여기에 ‘번아웃’ 같은 거창한 이름을 붙이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난 항상 그랬다. 다 귀찮고, 놀고 싶고, 꼭 해야 한다면 최대한 편하게 가고 싶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 굶어 죽지 않은 채 커리어를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원체 겁이 많아서가 아닐까? 이러다 진짜 망할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비슷한 루트를 밟던 이들과의 격차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질 거라는 두려움. 일에 대한 애정이나 성장을 향한 집착에 가까운 욕구처럼 멋드러진 명분은 내게 없다. 생존에 대한 불안과 나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최소한의 책임감 같은 현실적인 구실만 있을 뿐. 쿨하지도 성숙하지도 않은 면모지만 이조차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었으니 아직 최악의 상태는 아니라고 자위해 본다. 진짜로 내 두 발을 움직이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것에서 무기력으로부터의 탈출은 시작될 것이다. 징징거리며 엄한 데만 빙빙 돌다가 더 깊은 공허와 우울의 수렁에 빠지는 건 상상하기도 싫다.
지금이야 더위를 핑계로 틈만 나면 빈둥거리지만 처서가 지나고 추분에 이르면 나는 또 어떤 변명거리를 찾아 나서게 될 것인가. 그게 얼마나 기똥찬 아이디어든, 내년 여름에 에어컨 대신 선풍기 앞에만 붙어 있거나 눈물을 삼키며 좋아하는 냉우동집을 그냥 지나쳐야 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보다는 효과가 약할 것이다. 예의도 없고 성의도 없는 클라이언트의 작업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보다도. 원래 겁쟁이들에게는 충격요법만 한 게 없다.